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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들
페터 빅셀 지음, 최수임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참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읽어버렸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라는 표현만으로 설명이 되는 이야기들은 많지만, 이 소설은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어떤 인물을 창조해내고 그 인물의 행동, 생각, 성격, 성장배경, 그리고 인물의 일상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것을 활자로 옮겨놓는 동안 인물은 어느새 자아를 가진 존재처럼 작가의 손을 떠나 버린다.
작중 인물인 '키닝어'는 실체가 있는 듯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실체가 없는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창조주라 할 수 있는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버리다니, 도대체 너는 누구란 말이냐?
토마토 색으로 칠해진 우중충한 벽, 낡은 수도관은 새고, 보일러는 제대로 돌아가지않는 이 낡아빠진 집에서 여섯살 난 아들 '마티아스'와 아내와 함께 다락층에 세들어 사는 '나'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키닝어'가 이 소설에서는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 작가와 주인공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둘은 만나지 않는다. 작가의 묘사를 통해서만 그를 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인 '나'는 그에게 키닝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고향 '빈'에 두고온 '엘프리데'라는 애인까지 만들어 준다. 번듯한 직업과 취미까지.
이런 키닝어가 점점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저자와 등장인물의 혼연일치를 의미하는 것 이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인간은 이야기 하는 존재인 동시에 이야기 되는 존재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시의 한소절처럼 인간이란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 되었을 때에야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저자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는 키닝어도 이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원래부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계절이 돌고 돌듯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해서 돌고 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계속된다. 언젠가 그 이야기가 끝나면 훌쩍 떠나가버린 키닝어도 계절따라 다시 돌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