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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 1 ㅣ 뫼비우스 서재
심포 유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심포 유이치' 하면 '오다 유지' 주연으로 영화화 된 바 있는 <화이트 아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다이내믹한 화이트 아웃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이 <탈취>의 재미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탈취>는 한마디로 말해서 위조지폐를 제조하는 (귀여운)일당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돈만이 목적이 아닌, 복수를 위한, 그리고 완벽한 위조지폐를 만들기 위한 한 남자의 집념의 드라마입니다. 결코 마니아 취향의 소설은 아니고, 대단히 역동감 있는 모험 소설이면서, 어떤 면에서는 청춘 소설같은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묵직한 소재와 치밀한 범죄수법의 묘사에 비하면 의외로 분위기가 시원시원하고 경쾌해서 좋습니다.
주인공 '미치로'는 전화카드나 자동 판매기등의 인식장치의 맹점을 이용해서 잔돈을 챙기는 수법을 자주 씁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컴퓨터를 다루는 데도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 미치로가 야쿠자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붙잡혀 있는 친구 '마사토'를 위해서 현금 인출기만을 속이는 위조지폐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지만, 이것이 야쿠자에게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그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기이한 노인의 도움을 받아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위폐제조의 길을 걷습니다. 야쿠자에 쫓기면서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서서히 위폐 제조의 노하우를 터득해 갑니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만든 최고의 위조 지폐를 무기로 복수를 감행합니다. 만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개성넘치는 등장인물들에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비록 범죄이긴 하지만, 한단계 한단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당의 모습에서는 왠지 즐거운 성취감 같은것 마저 느껴집니다.
지폐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최첨단 인쇄기술의 집약체였네요. 이런 인쇄기술이나, 위폐에 관한 지식, 인쇄기, 스캐너, 제지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또 그 제조공정에 대해서도 대단히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발표되었을 당시에 이 책이 정말로 위폐 제조범들의 교본이 되었다거나 하는 숨겨진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졌을 정도입니다.
등장인물중에는 주인공들을 돕는 소녀 '사치오'가 특별히 매력적입니다. 얼마전 관람한 영화 <킥애스>의 '힛걸'이 떠오르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치오는 힛걸처럼 총기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거나 카메라를 향해서 "쇼는 끝났다. 이새끼들아!" 하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맹랑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짱좋은 소녀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바람직한 성장을 한 뒤에도 그 톡톡튀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탈취>는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과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읽어보니 역시 상 받을만한 통쾌한 오락 소설입니다. 400페이지 남짓의 책 2권으로 상당한 분량이지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이라 생각보다 금새 다 읽어 버렸습니다. 결말도 찌질하게 여운같은 거 남기려고 애쓰지 않고 비교적 쿨한 편입니다. 결말부분에서 밝혀지는 '심포 유이치' 라는 필명에 얽힌 비화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