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유명 개그맨인 '마츠모토 히토시'가 감독, 주연한 <대일본인>(2007)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만 놓고 보면 뭔가 일본 우익의 냄새가 좔좔 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일본인'이란,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괴수들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말하자면 '울트라맨'과 같은 특촬 영웅의 이름이다.

괴수가 나타나면 전기를 맞고 일본식 빤스인 훈도시 차림의 거인이 된다. 몽둥이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변태같은 외형의 괴수들을 퇴치한다. 이런 대일본인의 어눌하고 능청스런 인터뷰가 압권인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이런 영웅이 평소에는 노숙자 같은 변변치 못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영웅도 그저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 하루하루 밥벌이를 걱정하는 보통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싸우는 대일본인의 등에는 스폰서의 광고 스티커가 달려있다. 사람들도 이런 대일본인에게 무조건 환호를 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냉소에 가깝다. "민폐에요. 보기 흉해요."

이 책에 수록된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라는 단편에서 이와 흡사한 재미를 느꼈다. 음성변조된 목소리로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하고 시작되는 인터뷰의 주인공은 지구를 침략한 외계종족 '기간토기구타' 에 맞서 싸웠던 합체로봇의 왕년의 조종사.

지구를 지켜낸 장본인이라는 자긍심같은 건 일절 없고 시종 시니컬한 인터뷰에서는 뭔가 의심쩍은 일 투성이였다는 뉘앙스가 짙게 풍긴다. 전투 로봇이 두발 달린 휴먼형으로 개발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개발자들의 그래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서다. 변신하는게 유행이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까 슬슬 합체쪽으로 가보자는 뭐 그런 분위기가 돌았다는 것이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의 탄생배경이라는 모양이다. 허리가 꺾이고 하반신만 열심히 싸우는 등 여러 꼴불견인 시험기들을 거쳐서, 두대가 합체하는 로봇, 다섯대짜리, 일곱대짜리, 나중에는 백대짜리까지 개발되더니, 최종적으로는 52만대가 합체하는 리바이어던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렇다보니까 조종사들도 책임의식이 결여될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막내가 운전하는 거 뒤에서 보면서 막 참견하고 누구 한명이 사발면이라도 끓여 먹을라 치면 냄새가 온 기체에 진동을 한다. 그럼 전부 라면 하나씩 들고 먹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고기도 구워먹고 오징어 땅콩을 파는 장사치들이 온 조종석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로봇의 부위별로 조종사들끼리 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한다. 성기 부위의 조종사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이런 리바이어던의 막강한 위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종국에는 그 탄생배경이 무색할만큼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리니 솔직히 뭣때문에 만들어진 로봇일까 싶기도 하다. 표제작은 <안녕, 인공존재!>이지만 이 황당한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야기야말로 이 작품집의 존재 이유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밖에도 얼굴이 갑자기 풍선처럼 커져버린 스나이퍼라던가, 상식을 초월하는 기괴한 설명으로 딸을 평생 헷갈리게 만드는 엄마의 설명력등, 개그적인 발상이나 엉뚱한 발상으로 쓰여진, 넓은 의미에서의 SF단편집이라 할 수 있다. "다른별에서 써가지고 온 것 같은"이라는 추천사에 걸맞는 재기발랄한 이야기들이었다.

뒤에 해설에 보면, "인간에 대한 가치있는 통찰이 없다면 절반이 아니라 전부 없는거나 마찬가지"라는 해설자의 문학에 대한 견해가 실려있는데, 그러면서 저자에 대해서는 "아직은 그의 인간 탐구의 깊이가 그가 갖고 있는 재능에 값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거기까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그냥 재밌어서 읽는 건데, 이 책이 만약에 그 인간 탐구 어쩌고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품집으로 쓰여졌다면 과연 재미있었을까? 오히려 그런 관념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옭아매는 원흉이 되었을 것 같은데 어떨런지. 이 작가는 다음에도 지금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아니, 인간 탐구의 깊이 같은건 어찌되도 좋으니까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계속해서 더 재미있고 더 기발한 상상력을 추구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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