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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기억
호사카 가즈시 지음, 이상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창문을 열면 어디선가 계절의 냄새를 싣은 바람이 불어온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훨씬 더 오래 전에도 이 냄새는 한결같다. 그렇지만 이미 과거가 된 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리 없다. 계절만이 이렇게 되돌아와 한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덧없는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게 하는 이 순간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쓸쓸하다. 이 소설 속에서 '미사짱이 말하는 '이상한 슬픔'이란 바로 이런 감각일까.
“언젠가 몇 년이 지나 기억나는 날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아닐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사소한 계기로 문득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시간들. 화자인 '나'는 38살의 이혼남. 이나무라가사키라는 곳에서 5살짜리 아들 구이짱과 함께 살고 있다. 여기서 3채 떨어진 대각선 맞은편 집에는 심부름센터를 하고 있는 마쓰이씨와 그의 스무살 연하의 여동생 미사짱이 산다. 이들은 가끔 놀러 가는 구이짱을 귀찮아하지 않고 가족처럼 살갑게 대해준다. '나'는 이들과의 이런 따뜻한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것은 시류를 거스르는 듯한 소소한 일상의 시간들이다. 시간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하루하루.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정적인 연애담이 있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들. 사건이라고 해봐야 미사짱의 친구였던 낫짱이 이혼하고 이나무라가사키에 돌아오거나, 게이인 니카이도가 실연당하거나, 혹은 낫짱의 딸 '쓰보미'와 구이짱이 다투는 정도. 이런 시간들을 '나'는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린 아들과 함께 산으로 바다로 산책을 하며 보낸다.
시골마을 이나무라가사키의 계절이 바뀌어가는 풍경. 놀고 있는 구이짱의 모습. 구이짱의 질문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진지하게 답한다. 시간이 뭐냐는 설명하기 막연한 것에서부터 '피난포'가 어쩌고 하는 아이들 특유의 이해불가한 질문까지도 최대한 고심해서 성실하게 답변한다. 어린 아들과의 이런 대화가 마치 끝말잇기처럼 이어진다.
아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라난다. 구이짱이 자라는 속도 만큼이나 이 잔잔한 시간들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나'의 실감도 커져가겠지? 언젠가는 이 소소한 일상들도, 불어오는 바람에 떠올리는 기억속의 시간이 되어 버린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가 왠지 애처롭게 느껴진다. 앞으로 구이짱 은 어떻게 변해갈까? 미사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