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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브레인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 새로 영화가 개봉하거나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있으면 그걸 보고와서 다음날 손짓 발짓 섞어가며 실감나게 이야기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입담이 보통이 아니라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빨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관심도 없던 영화인데 흥미가 생겨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생각한다. 아! 그자식은 어떻게 이따위 영화를 그렇게 재미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런 재담꾼들이 보통 한반에 한명쯤은 있었던 것 같다.
과학 에세이 류의 글을 집필하는 저자중에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 한다면 현시점에서는 ‘말콤 글래드웰’이나 ‘리처드 와이즈먼’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이책의 저자인 <샹커 베단텀>에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단연 최고의 입담꾼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 책이 아마존 심리학서 부문 1위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독자를 끌어다니는 문장의 흡입력이다.
왜 우리는 우리가 주문하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따라하는 웨이트리스에게 평균적으로 음식값보다도 많은 140퍼센트의 팁을 주는가? 왜 더 흑인처럼 보이는 용의자일수록 사형판결을 받을 확률이 월등하게 높아지는가? 서민들이 버락 오바마를 외면한 이유는? 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의 유권자들이 대량으로 공화당인 레이건에게 표를 던졌는가? 911 테러 당시에 세계무역센터 빌딩 88층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탈출했지만, 89층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 희생당하고 만 이유는 무엇인가? 테러리스트들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자살테러를 감행하는가? 이 테러들이 과연 종교적, 국가적 신념하에 저질러지는 것인가? 등등
『히든 브레인』, 즉 『숨겨진 뇌』의 작용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와 실험결과를 들어 이야기한다. 우리가 의식하고 선택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허상들, 그리고 그런 무의식의 작용에 의한 우리의 편향에 대한 고찰이다. 심리학의 관점이든 혹은 뇌과학의 관점이든 그 접근 루트는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최근에 경쟁하듯 여러 저자들이 소재로 삼고 있는 인간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최근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주제의 책을 읽어 온 사람이라면 크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런데도 이 책이 빛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화술에 있다. 실험실에서 행해진 몇몇 실험 결과들도 놀랍지만, 그 실례로서 저자가 선택한 에피소드들은 그 결과를 대충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의 드라마틱한 스릴러 소설이나 논픽션을 읽고 있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특히, 6장 『사이렌 소리』에서 다루고 있는 서른 한살의 여인 ‘데레사 워드’에게 닥친 말도 안되는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시종 숨막히고, 분노를 금치 못할 정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그 사례들이나 결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 조차 꺼려지는 걸 보면, 이 에피소드들은 ‘숨겨진 뇌’를 설명하는 자료이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인간의 사고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것 같지만, 실은 이렇게까지 숨겨진 뇌의 조종에 무력한 어설픈 면도 가지고 있다.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던 이미 우리는 이 숨겨진 뇌의 존재로 인해서 정치, 마케팅 등에 숱하게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스스로도 경악할만한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엄연히 우리 속에 내제되어 있는 이 숨겨진 뇌를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