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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뒤늦게 뜬금없이 벚꽃놀이가 가고 싶어진 참이지만, 6월이 코 앞에 와있는 지금에 와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요전날, 오랫만에 간 찻집에서 먹은 특제 시폰 케잌. 벚꽃 향의 풍미가 훌륭하고 포동포동한 식감이 꽤 맛있었다. 내 친구 성호는 소문난 주당인 주제에 단 것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별종이다. 오후 3시쯤 되면 수다쟁이 여직원들처럼 간식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그런데도 전혀 살이 찌지 않는 걸 보면 선천적으로 호리호리한 유전자를 타고난 체질이다. 이런 럭셔리한 체질에다 수려한 외모를 버팀목으로 해서 남은 올 한해도 예년처럼 집에서 빈둥거릴 예정.
그런건 뭐 어찌 되도 상관 없는 얘기고,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었다. ‘클로델’은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극작가. 소설 안에서 무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무렵 독일에 흡수통합되었던 프랑스의 ‘로렌’지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클로델의 작품은 『회색 영혼』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전작 『회색 영혼』도 결코 밝은 이야기라 할 수는 없지만, 『브로덱의 보고서』는 한층 더 묵직하고 답답한 이야기였다.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어서 다음이 신경 쓰이는데도,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만만한 소설이 아닌지라 하루에 손 가는 대로 조금씩 읽어 나갔다. 그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내용도 전작 보다 더 깊어졌다. 포동포동한 식감이 꽤 맛있었다.
제목에서 얼추 짐작할 수 있듯이, ‘브로덱’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밤마다 타이프 라이터로 써내려가는 내용에 의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종전 직후, 브로덱이 사는 마을에서 한 남자가 마을사람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사건 직후에 우연히 현장에 나타난 브로덱이 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보고서’작성을 떠맡게 된다.
남자는 왜 살해당했나? 그리고 하필이면 ‘브로덱’에게 보고서를 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당초 무엇을 위한 보고서인가?
숲으로 둘러싸인 변두리 작은 마을의 현재와, 전쟁 중에 수용소에서 체험한 ‘브로덱’의 장렬한 과거가 번갈아 가며 희자된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브로덱의 심경이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 소설에서 브로덱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극한 상태에서의 인간들의 모습이다. 광기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벌레취급하는 인간들.
그 시작은 증오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광기를 자꾸자꾸 부풀려 가는 것은 증오가 아닌 공포라고 그는 말한다. 수용소에서 ‘개’로 지내던 브로덱의 체험과, 그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뒤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언뜻 보기에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연약함, 공포에 사로 잡힌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인과 악인이라는 선긋기 자체가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나름대로는 그런 거창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아직 이 책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살해당한 ‘안더러’는 도대체 누구였는가? 그가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인가? 수수께끼는 남겨진 채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