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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평점 :
2005년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1위인, <노리츠키 린타로> 혼신의 장편 미스터리!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를 읽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원서로 장만해 놓고도,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에 치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이제서야 뒤늦게 한국어판으로 읽었습니다. 왠지 감개가 무량하네요.
노리츠키 린타로는 『점성술 살인사건』등으로 유명한 ‘시마다 소지’와 함께 ‘신본격’ 제 1 세대로, 본격 미스터리의 새바람을 일으킨 공로자로 일컬어지는 한사람입니다. 막상 읽어보니 과연 소문으로 듣던대로 중후함과 정밀함을 겸비한 걸작입니다. 저자와 동성동명의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이점입니다.
_ 유명 조각가인 ‘가와시마 이사쿠’는 스무살이 된 딸 ‘에치카’를 모델로 조각상을 제작하지만, 완성과 동시에 운명을 달리합니다. 이사쿠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던 그 때에 누군가가 그 조각상의 목을 잘라 가져가 버립니다.
_ 이사쿠의 동생인 ‘가와시마 아쓰시’는 이 사건이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친분이 있던 ‘노리츠키 린타로’에게 조사를 의뢰하지만, 린타로가 이사쿠와 에치카의 복잡한 과거를 조사하고 있는 동안 결국 에치카는 실종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별로 사건 같은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이야기도 담담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조각상의 목이 잘려나간 게 뭐 그렇게 대수냐! 하는 심술궂은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중독성 있는 필치,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흥미를 가지게 할만큼 조각에 대한 지식을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저자의 노련함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척척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린타로’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가와시마 이사쿠’와 사별한 부인, 처제와 그 남편 사이의 애증극이나, ‘에치카’에 스토커 행위를 하고 있던 카메라맨의 존재등이 드러나면서 점점 인물들 간의 인간 관계에 신경이 쓰여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무서운 사건이 발발해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제목에 나와있는, 네 그렇습니다. 잘린 머리 군(양)의 등장입니다.
조각상 사건만 놓고 봐도 동기, 수단, 범인 모든게 불명인 수수께끼투성이의 사건인데, 거기에 실제 살인 사건이 추가되니까 상당히 다채로운 소설입니다. 게다가 몇번이나 실패하면서도 린타로가 논리적으로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의 긴박감이 굉장하기 때문에, 제법 분량이 많은 소설인데도 늘어지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특히 결말 부근의 여러가지 수수께끼가 차례차례 풀려 가는 대목은 완전 논스톱으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본격 미스터리다!’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필적하는 흥분감은 맛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트릭 하나하나, 수수께끼 풀이에도 파괴력은 충분히 있습니다만, 독자를 부추기는 과장된 연출은 별로 없기 때문에 시원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 이 소설은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마지막 결론 보다는 그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특히 에치카의 출생에 대한 여러가지 암시라던가, 단서를 제공하는 방법이 절묘하기 때문에 그만 다양하게 상상해 버립니다. 작가의 손바닥 안에서 제대로 잘 놀아났다는 기분이랄까요.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는 경악의 대트릭으로도 연출할 수 있을 법한 소재를 가지고 비교적 수수한 결말을 이끌어 낸 데 대해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수권 10장을 11장으로 늘리는 수법으로 시체를 늘리거나 하는 모작가의 것보다는 이런 견실한 트릭이 더 마음에 듭니다. 취향 차이겠지요.
등장 인물의 의견 하나하나마다 ‘그런 것이었던가!’ 하고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이고 난 참입니다. 인물들의 설득력 있는 대사가 또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