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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매주 토요일만 되면 스넥바 ‘에이프릴’에는 어김없이 다섯명의 단골손님이 찾아온다. 이들은 칵테일을 시켜놓고 잡담을 나누면서 한 남자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방문객의 정체는 다름아닌 스님. ‘지장’이란 법명을 사용하는 행각승이다. 스님은 수행차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고 계셔서, 여행 중에 신기한 사건들과 자주 마주치는 모양이다. 단골들이 기대하는 것은 스님의 그 기상천외한 체험담인데, 매주 반복되면서도 화젯거리가 끊겨서 실망시키는 일이 없고, 게다가 죄다 살인 사건인 걸 보면, 살인 사건에 말려 들어가는 게 또 특기인가 싶을 정도.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사건의 진상을 보기좋게 간파 하고 계신다는 점. 사건의 전말이 궁금해져서 일행은 곧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버린다... 는 패턴의 반복이다.
‘지장스님’이라는 이 분, 엄연히 스님 신분이면서도 어쩐 일인지 좋아하는 술은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 게다가 좋아하는 담배는 ‘던힐’. 비용은 모두 이 모임의 멤버들이 계산한다. 이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정착된 모임의 암묵적인 룰. 그도 그럴게 이런 흥미진진하고 기묘한 체험담을 본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면 ‘보헤미안 드림’보다 더 비싼 것을 대접해도 그렇게 아까울 것 같지는 않다.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이번주는 이 이야기를 하겠소...” 하고 나오는 건 아니고, 처음에는 멤버들과 함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대화를 나누다가, 예를 들어 열차가 대화의 화젯거리로 떠오른다거나 하면, “열차라면 이런 일이 있었지..”하는 식으로 본격적인 ‘지장스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장스님’ 본인은 일단 모든 이야기가 자신이 수행 도중에 체험한 실화라고 말하고 있지만, 범인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지방 철도 살인이나, 접근하는 것 조차 힘든 바위 동굴에서 발생한 폭탄 살인, 숲 속 저택의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등등 그 일면을 보면 하나같이 미묘하게 허풍 냄새가 나는 기묘한 사건들뿐이다. 스님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지장스님’은 그야말로 명탐정. 가히 ‘셜록 홈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뭐, 오랜 수행으로 다져진 수도자의 통찰력이라면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 정도는 별거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 어쩌다 보니까 스님의 실력을 내심 의심하고 있는 듯 한 표현을 써버렸는데, 그건 아니고, 자신이 꺼낸 이야기 말고도 대화중에 불시에 화제가 되는 추리의 정답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놓는 걸 보면, 비범하지 않은 능력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다. 운이라던가, 법술같은데 의지하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논리의 타당성을 앞세우는 철저하게 본격 미스터리의 정신에 준거한 인물이다. 아무튼 사실이든 허풍이든 이 ‘에이프릴’에 모이는 단골은 모두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이라 이것 역시 암묵적인 룰로써 아무도 스님의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사건이 튀어 나올까를 기대하는 것은 이 모임의 최고의 즐거움. 한 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멤버들이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결국은 지장스님의 해답을 듣고 감탄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지장스님은 자리를 뜬다. 일종의 「추리 게임」같은 느낌이다. 전형적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다운 소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화자와 청자간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런 이야기는 뭔가 참여하고 있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진짜 이야기 같은 맛이 난다.
이런 식으로 주말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즐거울지도 모른다.
무료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뭔가 귀가 확 뜨이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번 토요일 밤에는 콧수염이 근사한 바텐더가 운영하는 스넥바 ‘에이프릴’을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런지. 예약은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