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
마티 크럼프 지음, 유자화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아침 뉴스 해외토픽 시간에 ‘원앙’과 ‘오리’의 종을 초월한 러브 스토리를 보았다. 내용인즉슨, 일본의 유명한 호수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붙어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숫원앙과 암오리 커플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은것. 그런데 얼마 후에 암오리가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인근 주민들은 짝을 잃고 정신적으로 大핀치에 몰려 있을 이 숫원앙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원앙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암오리를 꼬셔내서는 보무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는 모양이다.
...하여간에 사람이나 새나 남자들이란,
참으로 멋쩍은 사연이다. "너무 빠른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라는 한 주부의 ‘스스로도 별로 납득은 가지 않지만 일단 말한다’는 느낌의 당혹스러운 인터뷰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흔히 동물들이 사람과 다르게 철저하게 본능에 의해서 프로그래밍된 행동패턴으로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과연 그럴까? 이들도 욕구가 있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변칙적인 방법도 불사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런 동물 사회의 기상천외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같은 조류라도 십여년 동안 평생을 두고 한결같이 한 상대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기러기’의 예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멀쩡한 배우자를 곁에 두고도 난교를 일삼는 발랑 까진 새들도 있다.
‘가터뱀’이나 ‘등애모기’, 그리고 포유류인 ‘여우 다람쥐’나 ‘동부 회색 다람쥐’는 교미후에 암컷의 생식기를 교미마개로 틀어막아 놓는다. 말하자면 품절표시인데, 암컷에 따라서는 수컷이 목숨과 맞바꾸어 설치한 이 정조대를 주섬주섬 해체해서 다시 사용가능한 상태로 돌려놓기도 한다니 이미 세상을 하직한 수컷에 입장에서는 허무하기 이를데가 없다.
‘코스타리카 할리퀸 개구리’는 자기가 점찍은 여자를 다른 사내들이 집쩍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아예 암컷의 등에 매달려 교미를 할때까지 무작정 버티기에 나선다. 암컷은 본의 아니게 그 무거운 걸 등에 이고 다니는 중노동을 하게 되지만, 그러다가도 혹시라도 빈틈이 보이면 그 순간 여지없이 수컷을 바닥에 패대기 쳐 버린다.
원숭이 사이에서는 털 골라주기가 일종의 물물교환 형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수컷이 암컷의 털을 골라주고 그 댓가로 교미가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권위있는 수컷일수록 털 고르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사실. 권력이 가진 프리미엄으로 힘센 수컷은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얼마든지 데이트가 가능하다. 암컷 역시 적은 댓가만으로도 그에 응한다. 힘센 수컷들이 이런 효율적인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반면에, 권력에서 한참 밀려나 있는 비주류들은 성심성의껏 장시간에 걸친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암컷이 거부하면 그마저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다. 만약 이 원숭이들이 인간의 말을 할 줄안다면 제일먼저 이렇게 부르짖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동물들의 러브 스토리 이외에도 동료애나 공생관계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3일만 먹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일반 흡혈박쥐’는 다른 동물로부터 피를 빠는데 안타까이 실패한 친구들을 위해서 자기가 먹은 피를 게워낸다.
‘지도거북’은 몸이 근질거리면 찌르래깃과의 새 ‘그래클’에게 거머리를 떼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햇볕아래에서 까치발을 하고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뻗고 기다리면 ‘그래클’이 거북의 몸 구석구석에 매달려 있는 거머리를 떼어먹는 시스템. ‘그래클’이 청소를 하는 동안 ‘지도거북’은 꼼짝않고 그 부자연스런 자세를 줄곧 유지한다. 동물세계의 유사 때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극적이고 재밌는 일만 잔뜩 써있는 것 같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큰 맥락은, 모든 생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자연계는 바로 이런 서로 다른 종들간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어서 포유류, 조류, 곤충, 식물, 심지어는 세균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계하고 있고, 이들 중 한 종이 심각한 변화를 겪으면 나머지 생명체의 환경도 모두 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일부는 행동패턴의 진화를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지만, 나머지는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자연계의 심각한 변화 중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은 가슴아프다.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자연계의 유기체 사이의 고유한 관계를 손상시키면 손상시킬수록, 그 뼈아픈 결과는 결국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만다. 많은 것을 잃고, 후손들에게는 황폐화 된 세상을 물려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종족을 보존하고 살아남기 위한 생물들의 이 눈물겨운 고군분투기를 보면서, 인간이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귀하고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더이상 생태계에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이제는 정말로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딘가에서 죽은 암오리의 호통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