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케인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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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무수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져가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반드시 그 이야기의 수에 정비례해서 비약적으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영화상영에 즈음하여 재조명되는 마초 영웅의 선구자격 액션 히어로 「솔로몬 케인」은, 중세의 전사들처럼 용맹스럽게 칼자루를 휘두르다가도 동시에 서부시대 총잡이들처럼 총기류를 난사하기도 하는 최근의 바이올런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야만인 코난의 창시자이기도 한 「로버트 E.하워드」가 창조해 낸 이 영웅은, 시종「키쿠치 히데유키」나 「유메마쿠라 바쿠」 로 대변되는 일본의 바이올런스 소설 작가들의 작품이나「데빌메이 크라이」와 같은 동종의 액션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나도 독자의 마초본능을 자극하는 이 일본 작가들이 만들어낸 캐릭터와 세계관에 경탄을 마지않던 시기가 있었는데,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30세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 작가가 후세의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했을 리는 만무할 터, 반세기 이상 지나 쓰여진 그것들이 모두 바로 이 하워드의 직계후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독한 방랑자이자 정의의 집행인인「케인」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최근의 미국식 수퍼 히어로들과는 달리 주인공의 탁월한 신체적 능력과 함께 인간적인 고뇌와 한계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다 사실적인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청교도적인 그의 가치관이나 그 가치관에서 비롯된 무차별 학살(?)은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이것이 과연 정의인가 하는 모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16세기라면 신의 이름 아래 마녀사냥마저 용납되던 시기이다. 그것이 옳다는 신념에 따라 스스로를 희생해 묵묵히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케인은 분명 이 시대의 가치관이 낳은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는 인간은 한없이 미약한 존재라서 우리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것이 언제나 반드시 진리는 아닐수도 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한다.

그런건 차치하고라도, 흑마법과 주술이 판을 치고, 선과 악의 경계조차 뚜렷하지 않으며, 아프리카 땅을 미개한 야만인과 괴물들이 사는 미지의 땅으로 인식할 정도의 중세인들의 편협한 시야에 기반한 이 음침하고 모든 것이 애매모호한 세계관 속에서, 정체 불명의 악을 향해 총과 칼을 휘두르는 냉정하고 강인하며 표범과도 같은 날렵한 청교도 전사는 그것 자체로 남자들의 애써 억누르고 있는 전사로서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최근에 창조되는 영웅들을 보면 이런 요소들이 적절하게 조화된 또다른 진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특정한 형식에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이 로버트 E. 하워드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솔로몬 케인>이 갖는 문학적인 의미와 더불어서, 서문격인 『로버트 E. 하워드에 대한「H. P. 러브크래프트」의  회고』, 후기격인 『로버트 E. 하워드 연보』 등은 이 책을 단순히 소설이 아닌 하나의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해준다. 특히 이야기가 한참 흥미진진하던 도중에 갑자기 중단되는 두편의 미완성본의 수록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천재작가의 행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허탈함과 동시에 안타까운 여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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