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 101 -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7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지음, 백종유 옮김 / 들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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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는 지도에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하는 인구 30만명의 조그만 섬나라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또 그것에 그리 집착하지도 않는 아웃사이더 근성을 가진 민족.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온 아이슬란드인들의 그런 모호한 정체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후손들에게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만큼은 본인들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이슬란드의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사는 어느 기괴한 백수의 이야기이다. 세른 네살의「힐누어 비외르든」은 나이를 먹고도 이혼한 엄마의 그늘 아래서 일정한 직업 없이 실업급여를 받으며 탱자탱자 살아가고 있다. 티비나 포르노 비디오감상, 밤이면 술집이나 클럽을 전전하면서 여자를 꼬시는 게 힐누어의 반복되는 일과. 그런 그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황당하게도 레즈비언임을 선언한 엄마, 그런 엄마의 애인인 로라와 어쩌다보니 동침을 하게 된 힐누어. 얼마후 그는 로라가 임신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게다가 이전부터 종종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던 호피 역시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평온하던 일상을 한방에 날려버린 이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타계책,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힐누어의 이런저런 고민들을, 기상천외하고 배꼽잡게 만드는 몽상과 함께 버무려 낸다.

얼마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광풍에 휘말려 국가파산을 선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유럽의 이 작은 섬나라는 부유하고 복지가 잘되어있는 살기좋은 나라였다. 서른 네살씩이나 되어서도 일자리없이 실업수당만으로 먹고 놀 수 있는 나라. 일찌감치 취업걱정부터 하게되는 우리와는 그 위기의식이라는게 근본적으로 달라 보인다. 놀고 있으면서도 그로 인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않고, 심각한 가정사에도 비교적 관대하고 여유롭게 대처해 나간다.

또, 아이슬란드는 몇달씩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는 곳이기도 하고, 반대로 하루종일 밤인 날이 몇달씩 지속되는 극야가 있는 땅이기도 하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밤과 같다면 그 시간을 아이슬란드의 연인들은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  아무래도 역사가 이루어지는 빈도가 빈번해지지 않을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성풍속도가 자유롭다는 것을 느낀다. 대단히 자유분방한 사고와 관념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때로는 심각하게 노골적인 대사도 서슴치 않지만, 그런데 그게 또 왠지 자연스럽고, 그렇게 난잡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으니 묘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철퇴를 맞을법한 장면도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장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에서 받아들여지는걸 보면, 가치관이 먼저 그 행위의 무게를 좌우하게 되는 것일까. 너무나 당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을 드러낼 타이밍을 찾을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백수 주인공이 자기 생각을 주절주절 풀어놓는 이야기일 뿐인데도 우리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독특한 형태의 이야기가 되었다.(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독특한 것은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하지만) 저자 「하들그리뮈르 헬가손」은 아티스트 출신. 그래서 그런지 독창적일 뿐 아니라 정말로 힐누어의 몽상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감각적이기도 하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수 있기를.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이 묻어나오는 이 소설은 생소하지만, 영미권이나 같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문학의 분위기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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