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러 - 운명을 훔친 거울이야기
말리스 밀하이저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한 소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리스 밀하이저 Marlys Millhiser"의 <더 미러 The Mirror>.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된 것이 1970년대 후반. 무려 30년이상 숙성된 이 소설이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에 대해 정말이지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흙속의 진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본고장에서는 이미 당시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인 듯 합니다. "훔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재미있어 영국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도난 당했던 소설"이었다고 하니까요. 처음 이 문구를 접했을 때,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그런 과장된 수식어를 떡하니 내어놓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막상 읽어본 결과 도출된 결론은, 이 정도라면 나같아도 어쩔수없이 훔칠 수 밖에 없겠구나 입니다. 물론 책을 구입할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울로 인해서 서로의 운명이 뒤바뀌는 외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입니다. 손녀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젊은 시절의 할머니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할머니는 손녀가 되는, 넓게 보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타임슬립 류의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전형적인 SF/ 판타지류의 모습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바뀌어진 몸으로 인해 고뇌하던 그녀들은,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삶속에 동화되어 인생을 헤쳐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성장소설의 느낌마저 듭니다. 묘한 향수에 젖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구요.

자신의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자기 엄마를 낳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

스무살의 "샤이 가렛"은 어느날 78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외할머니인 "브랜드 멕케이브"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겁에 질려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가려 하는 샤이.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로 바뀌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결국 예정되어 있던 대로 광부인 코빈 스트로트와 결혼해 그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의 광산촌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이곳에서 샤이는 미래의 (샤이로서의)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으로 인해 미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샤이는 이곳에서의 비현대화된 생활에 차츰 익숙해져 갑니다. 할머니인 브랜드의 인생을 받아들여 갑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여성, 1978년 콜로라도 보울더에 살고 있는 샤이의 몸으로 날아온 브랜디 맥케이브가 있습니다. 78년전을 살던 그녀에게 현대에서의 삶은 벅차기만 합니다. 스무살 손녀의 눈으로 지켜보는 98세인 그녀 자신의 죽음, 출산을 앞두고 있는 (손녀의)육체, 그리고 개방적인 현대인들의 성의식에 대한 곤혹스러움까지. 수많은 난관이 그녀의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타임슬립을 다룬 작품들 중에는 애틋한 향수를 유발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지인들의 과거속으로 들어가 과거의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보고 싶다! 는, 어릴적부터 줄곧 해오던 상상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소설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라는 게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간의 역류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이어진 결속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놀라운 기분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뭐라 말할 수 없이 따뜻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과거로 날아가 젊은 시절의 부모님의 사이에 개입하게 된 주인공을 그린 영화 <백투더 퓨쳐>나, 과거로 미래로 건너뛰기를 되풀이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다가가게 되는 소녀를 그린 "츠츠이 야스타카" 원작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누구라도 나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거나 가까운 미래를 경험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은 대단히 로맨틱하고,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더 미러>는 이런 "노스텔지어"의 그야말로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기묘하고, 위험하고, 때때로 경이로운 거울 속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어느 독자의 감상이 인상에 남습니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그 분량을 체감하지 못할 만큼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책을 다읽고 난 뒤에도 좀처럼 헤어나올수 없는 이 여운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을 도둑으로 만든 장본인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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