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부터 줄곧 기다려 오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이제서야 읽었다. 번역되서 나오기까지 인간승리라 할만한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었다. 더불어 얼마전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SF스릴러 영화가 제작중이라는 반가운 소식까지 접할 수 있었다.(어쩌면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 소개하면, <남아있는 나날>로 영국 최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작가. 이 책 <나를 보내지 마>는 2005년 영미권에서 발매되자마자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타임지 선정 역대 100대 영문소설에도 선정되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나 부커상에 대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SF 영화로 제작된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작품은 부커상 외에도 SF상에 주어지는 아서 C. 클라크상의 후보로도 노미네이트 되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문학작품이 장르의 경계를 예사로 넘나드는 요즈음, 어떤 작품을 특정한 장르에 한정짓는건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경우도 미스터리 소설이나, SF, 짙은 청춘의 향이 물씬 풍기는 청춘소설의 면모를 두루 갖춘 퓨전적인 맛이 있지만, 그렇다고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글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문학적인 정취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쉬운 것은 자세하게 내용을 소개할 수 없다는 점. 이야기하면 할수록 재미를 갉아먹는 죄인이 된다 내가. 가급적이면 출판사에서 제공한 내용 정보 또한 피하기를 권한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캐시"라는 이름의 30대의 여성. 제공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돕는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어느 시골 마을의 "헤일셤"이라는 기숙 학교에서 동거동락해온 친구들과의 과거를 회상한다. 일반세상과는 고립된 이곳 헤일셤에서의 친구 루스나, 토미와의 달콤한 기억이나 그리운 추억들을 이야기해나간다. 읽어나가는 동안 고개를 드는 가장 큰 의문은, 이들은 왜 그런 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이 소설의 축이 되는 가장 큰 수수께끼다. 그 의문이 밝혀져 가는 과정이 어지간한 미스터리 소설 못지않은 큰 매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본격적인 추리극이 벌어진다거나, 교묘한 화술로 진실을 가리는 기교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그저 캐시의 입을 통해 지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 해 나갈 뿐이다.

조용히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스토리는 시종 평온하고 정적이다. 그 수수께끼의 껍질을 저자는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벗겨내 간다. 어느 순간 그 진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때, 지금껏 손을 꼭 잡고 끌고 다니던 것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처럼 그 무서운 전체상이 눈앞에 드러난다. SF적인 관점에서의 일종의 패러렐월드라 해도 좋고,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생명의 존엄성이 손상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고라 해도 좋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소설이다.

  

마치 단편소설처럼,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떼어낸 것 같은 단촐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폭넓은 독자층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오락적인 요소까지 갖춘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에 상관없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소설을 뽑는다면 이 소설을 단연 첫번째로 들고 싶다. 대단히 슬픈 이야기인 대신에 그 슬픔만큼 여기에 그려지는 희망은 순수하고 강렬하다. 캐시의 기억은, 나도 잊고 싶지 않다. 너덜너덜 눈물이 나오는 소설은 아니지만, 가슴 속이 흥건하게 젖는 소설. 다시 한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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