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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뱀이 잠든 섬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2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미우라 시온은 그동안 성장소설 비스무리한 소설만 보아와서인지 이 소설은 다소 의외였다고 해야 할지, 기뻤다고 할지. 성장소설의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전까지의 미우라 시온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필체만은 여전해서 미우라 시온을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왠지 한눈에 미우라 시온인지 알아볼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무대는 육지에서 한참 떨어져 나온 외딴섬, 오가미 섬. 이 섬의 주민들은 아라가키 신사를 중심으로 토속신앙을 숭배하며 살고 있다. "흰뱀님"이나 "그것"이 나온다는 미신이나 전설담을 일상적으로 믿는 이 외딴섬의 소년(고등학생)들이 목격한 이상한 사건.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가고 있지만, 시종 어린시절 여름밤의 담력훈련을 연상하게 하는 눅눅하고 밀도높은 공기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그저 섬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던 이야기가 13년마다 돌아온다는 대축제의 밤에 가까워 지면서 서서히 긴장감이 높아져 간다. 특이한 인습과 규칙들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외딴섬 사람들의 자아나, 오가미섬에 감도는 이상한 긴장감. 이런 토착적인 음산함과 함께, 소년들의 젊음과 우정이 어떤 면에서는 소녀소설 같은 느낌으로 그려진다. 읽는 내내 자꾸만 "오노 후유미"의 <시귀>가 떠오르곤 했는데, 아마도 섬에 감도는 그 음습함을 여성적인 시선으로 잔잔하게 그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왠지 분위기가 많이 닮은 것 같다.
방학을 맞아 배를 타고 섬에 돌아온 고등학생 사토시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초반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반기지 않는 섬사람들의 모습이나, 아라가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섬의 토속적인 풍습등에 대해 꽤 상세하게 이야기 해 나간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섬사람들이 "그것"이라고 부르며 무서워하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암시하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들어 가다가, 13년만에 거행되는 아라가키 신사의 대축제를 경계로 해서 이야기는 환상 소설이나 공포 소설에 가까운 분위기로 바뀌어 버린다.
환상소설이니, 공포소설이니 하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지념형제"로 맺어진 사토시와 고이치 두 소년의 우정과 정신적인 교류가 있다. 지념형제란, 의형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만한 오가미섬의 오랜 풍습. 끈끈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이 소년들의 활약으로 핀치에 몰렸던 오가미 섬은 평온한 일상을 되찾고, 사토시가 다시 육지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실은 끈끈한 관계로 말할 것 같으면 사토시와 고이치 이외에도 아라가키 신사의 차남인 아라타와 섬 밖에서 온 이누마루가 있다. 이 두 콤비의 이야기를 축으로 해서 소설은 돌아간다. 섬사람들은 외부인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중요한 축제때에, 아라타는 왜 이누마루라는 외부인을 섬으로 불러들인 것인지, 그리고 신사의 사람만은 왜 지념형제를 가질 수 없는가 하는 수수께끼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가 여성인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여성 취향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라이트노벨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 사토시와 고이치, 그리고 아라타와 이누마루 두 콤비의 매력은 상당하다. 어쨌든 호러, 환상 소설, 미스터리, 그리고 성장소설? 다양한 취향에 두루 어필할만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짬짜면 같은 소설. 여름날의 가슴뛰는 모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