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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모순이 거듭되는 기묘한 제목. 이것만으로도 읽기 전부터 기대가 풍선처럼 커져 버립니다만, 실제로 읽어 보면 이 제목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기기묘묘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 소설은 1989년 발표당시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순위에서는 8위였지만, 1998년판의 역대 베스트 20에서는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확실히 당시로서는 (본격추리의)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작품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앞서간 소설이라 해야 할까요.
미국의 어떤 시골 마을에서 죽은자가 되살아나는 괴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장의회사(꽤 규모가 큰) 일가의 허둥지둥 살인 희극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갈 것은 제목때문에 한없이 진지하고 그로테스크한 것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허둥지둥하는 부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가벼워서 의외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피해자가 사망자인 것은 당연합니다만, 용의자도 사망자,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도 사망자, 게다가 죽은 게 분명한 피해자가 다시 살아돌아오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의 연속. 살아있는 시체들이 사건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으면서, 사건을 혼란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미 죽은 피해자가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세계가 시종 펼쳐집니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도,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정신적으로는 이미 사망자나 마찬가지 상태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서, 이들 역시 "준살아있는 시체"로서 사건에 연관됩니다. 이런 살아있는 시체들이 생생하게 날뛰고 도는 세계는 좀비소설이 아닌가 싶을만큼 파격적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탐정 역인 주인공이 시작부터 허망하게 죽어버린다던가 하는 대담한 설정이나, 사망자가 되살아난다는 점 때문에, 혹시 추리소설의 룰을 무시하고 반칙을 일삼는(예를 들자면 밀실살인사건의 범인이 외계인으로 밝혀진다던가 하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전혀 기우입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소재로도 얼마든지 공정한 추리소설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저자의 독창성이 불을 뿜는 작품입니다.
독창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복잡하게 헝클어진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깔끔히 정리되는 데에 놀랐습니다. (본격)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기발한 복선이나 트릭, 예술같은 추리, 깜짝 놀랄만한 결말에 감탄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 이상으로 감정에 호소해 오는 작품을 만나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이 소설은 기상 천외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그 난해하게 어지럽혀진 것들을 마지막에 아름답게 정리하는 결말에도 감동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 박수와 함께 엄지 손가락을 하늘높이 치켜올릴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