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아, 정말 오랜만에 한판 신나게 웃었다. 어쩐지 시간탐험대라는 유명한 티비 에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였다.(모르겠다구요?) 혹시 돈데크만이라는 이름을 대면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엉망진창 대소동.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꾸려가는 유쾌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뒤죽박죽인 소설은 절대 아니다. 만화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서 그려낸 패러렐월드는 매우 기발하고 독창적이며,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틀이 잘 잡힌 소설이라는 느낌. 결정적으로, 대박 웃기다. 굳이 표현하자면 묘하게 가슴 설레는 포복절도 청춘 코미디라고나 할까. 이런 스타일의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열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작가가 어떤 면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인지 이 한편으로 충분히 잘 알 수 있었다. 일단 추천부터 한방 날리고, 개인적으로는 퓨전 사극을 연상케하는 이 작가의 독특한 문장이 소설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라면>, <어육완자>, 그리고 <해저 2만리>

"대학 3학년 봄까지 2년간을 돌이켜보건데 실익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대학에 들어오기 직전에는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이성과의 장밋빛 교제에 가볍게 투지를 불태우기도 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명 높은, 사랑의 훼방꾼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어버린것은 모두, 나의 숙적이요 맹우이자, 타기할 한 사내, 오즈의 탓이다.

약자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강자에게 알랑거리고, 제멋대로고 오만하고 태만하고 청개구리같고 공부도 하지않고 자존심은 터럭만큼도 없고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밥을 세공기 먹을수 있다는 오즈와 얽히는 바람에, 꿈많던 캠퍼스에서의 생활이 모두 꼬여버리는 주인공. 염원하던 검은머리 아가씨와의 로맨스도 물건너간지 오래이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던 때로 돌아가 모든걸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절규하지만, 그러나 또다른 인생에서도 여전히 우울한 회색빛 캠퍼스 생활속에서 우왕좌왕해 버리고 마는 21살 청춘의 이야기.

인기없고 별볼일 없는 남자의 비뚤어진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 음침하고 침울한 소재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재미있게(혹은 괴상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주인공은 시종일관 싫다 싫다를 연발하고 있지만, 그 싫어하는 오즈와 함께 벌이는 소동이란 것이 하나같이 시시껄렁하면서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에게 절실하게 하고 싶어지는 말이 있었다. 바보냐 너! 신선흉내를 내는(흉내인지 진짠지...) 자유인 히구치, 요염하지만 취하면 위험해지는 치과보조사 하누키, 그리고 쿨하고 발랄한 아가씨 아카시등등, 모든 등장 인물이 괴상하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개성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의 숙적이자 맹우인 오즈의 캐릭터는 단연 최고! 그렇지만 절대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는 않다! 

남자들의 순진한 마음을 살짝 어루만지는 요소들이 있어서, 혹시 연애 스토리로 이어지는것 아닌가 생각했더니, 이상한 데서 주인공의 자존심이 발동한다. 긍지를 잃지 않는다고나 할까. 결정적인 찬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친듯 날뛰는 거시기한 친구를 애써 무리하게 억누르는 부분, 정말이지 설마 그 친구와 대화로 타협을 시도하는 장면까지 등장할줄이야.(생각하니까 다시 웃음이 터지네요) 과묵하고 고상한 가오리씨를 앞에 모셔두고 오기로 버텨내는 장면등에서는, 주인공의 그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만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눈에 띄는 부분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실은 하나의 평행우주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는 설정. 주인공이 대학에 입학하는 부분까지는 동일하지만, 그 곳을 분기점으로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의 상황들이 전개되는데, 그 뒤의 미래가 서로 다르면서도 미묘하게 같은 길을 더듬어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 더이상 바보 같을 수 없는 일만 잔뜩 벌이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길을 선택해도, 결국에는 반드시 오즈와 엮이게 된다는 점에서, 운명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성취된 사랑의 뒷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무래도 당사자가 이야기 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 단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무늉했어요. 무늉했어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카시를 부디 행복하게 해주길 바래!
"만약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다른 2년간을 보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잘하면 환상의 지보라 불리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이 손에 거머쥘수 있었을지 모른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새로운 인생, 갈망하던 폼나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있는 것. 그렇지만, 인생에 리셋 버튼이 없는 이상 묵묵히 지금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거기에 집착하지만 그 시점으로 돌아가기면 하면 무조건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에 충실하자. 자칫하면 언젠가 다시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제에 집착해서 내일을 망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얼간이의 반열에 오르는 길이 아닐까.  때로는 어깨의 힘을 빼고, 부족한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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