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박안식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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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7세기초의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를 보면 여진족이 일으킨 청나라에 의해 맹주였던 명나라가 기울어 가고 있는 형국이였다. 그런데 이 두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잘 펼치고 있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16대 왕이 된 인조는 이러한 변화 앞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친명사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청나라를 배척하다 병자호란이라는 씻을 수 없는 화를 당하고 만다. 이 댓가로 한나라의 왕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찧는 역사상 가장 수모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되고 소현세자와 세자빈인 강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인조는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에게 한나라 소무의 예를 들며 간곡한 부탁을 한다. 비록 몸은 오랑캐의 포로가 될지언정 원수의 회유와 간계에 빠져 치욕을 잊지는 말라는 당부였다. 그러나 매서운 만주벌판의 칼바람을 맞으며 끌려온 심양에서의 볼모생활 동안 소현세자는 생각이 바뀌게 된다. 허나 그것은 인조의 기우처럼 청나라의 회유와 간계가 아니라 소현세자 자신의 냉철한 국제정세의 파악에 따른 것이었다.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국가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었고 흠모와 사대의 대상이었던 명나라는 부패와 무능으로 안으로부터 몰락해 가고 있었다. 

실체를 파악한 소현세자에게 있어 청나라는 삼전도의 치욕만을 내세우며 맹목적인 복수를 다짐할 대상이 아니었다. 소현세자는 청이 강대국이 된 이유를 알고자 했고 적이고 원수일 망정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현세자는 신흥강국 청나라의 실체를 인정하고 약소국 조선의 실리를 찾기 위한 일에 골몰하게 된다. 게다가 무능한 인조를 대신하여 청왕조에 대한 조선의 외교창구 노릇을 톡톡히 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현세자의 움직임을 아버지 인조는 자신의 왕위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심양으로 내관들을 보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명의 멸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조선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한다. 하지만 환국한 소현세자에게는 아버지 인조의 냉대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였다. 인조는 심양에서의 소현세자의 활동을 내심 못마땅해하고 있었고 원수인 청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결국 소현세자는 아버지인 인조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소설안에서는 감기에 걸린 소현세자를 학질이라 속여 독살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도 그와 비슷하게 소현세자는 귀국 두 달만에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몸져 누운지 삼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소현세자의 죽음은 그 갑작스러움만큼이나 많은 의혹과 소문을 남기게 된다. 아버지 인조의 의한 독살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의혹을 풀어줄 확실한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소현세자의 죽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말 안타까운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닐수 없다. 만약 소현세자가 순조롭게 즉위하여 청국에서 익힌 세계 정세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사를 펼칠수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일본보다도 오히려 한발 앞서 근대화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랬다면 아마도 이후 일본에 의해 또 한차례 맞이하게 되는 국난도 없지 않았을까. 소현세자와 그의 아버지인 인조의 모습을 보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국운이 크게 뒤바뀔수 있음을 새삼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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