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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와 인더풀에서의 정신과의사 이라부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탓인지, 오쿠다 히데오 하면 우선 웃긴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 웃긴소설 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 '스무살, 도쿄'도 으레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유머러스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책은 그리운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다.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다무라 히사오의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오쿠다 히데오 본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80년대를 지나온 모든 청춘군상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피라이터의 길을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서른살까지의 발자취.
평균 수명이 짧고, 스무살이면 이미 아버지 소리를 듣는 가장이 되어 있었을 옛날과는 달리 요즈음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은 넘어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린 나이에 충분히 훌륭한 한사람 몫의 성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기간이라는 의미는 별개로 하더라도 책임감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완성되지 않은 시기인 것 같다. 어른의 탈을 쓴 아이라고나 할까. 스스로도 어른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설사 가장이 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청춘이라는 것은 진정한 어른으로 가는 임시면허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때이자 자신을 완성해 가는데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징검다리같은 시기.
나고야 태생의 다무라 히사오는 대학교 입시에 낙방한 후, 단신으로 도쿄에 올라가 재수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도쿄로 올라와 햇빛도 들지 않는 허름한 방을 얻는다.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의 모습이 아침에 본 나고야의 자신의 방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타지에 나와있음을 실감한다. 그 때가 1978년도이다. 실제로 보는 도쿄의 모습에 압도되어 주눅들고 들뜬 가슴을 억누를길 없는, 그리고 낮선 도시의 생활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이 나고야 청년은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대학생이 되고 결국은 도쿄의 일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봉지를 든채로 먹을 장소가 없어 방황하고, 캔디즈의 굿바이 콘서트장 주변의 인파를 보고 두눈이 휘둥그레지던 열여덟살. 몰래 동경하는 대학 연극부 선배에게 말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보내는 나날들, 부원들과 매일같이 부어라 마셔라, 여자 부원중 한사람에게 마음을 상처를 준 일때문에 온 도쿄 안을 헤집고 다니던 코미디같은 에피소드.... 를 시작으로 이후 학교를 관두고 일찌감치 뛰어든 직장에서의 본격적인 카피라이터로서의 히사오의 청춘을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순차적으로 그려나간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되기 전까지 그저 풍요롭고 희망에 들떠 마냥 행복 할 줄 알았던 이시기의 일본인들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담담하게 그려낸다. 남의 나라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건만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다른점이라면 올림픽 유치의 실패로 쓴맛을 본 나고야와 성공한 서울이 언급되는 장면 정도. 책안에서는 그리운 복고의 냄새가 감돈다. 그런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수 없는 책. 그런데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에 남는 80년대의 사건은 역시 서울올림픽 개최인걸까. 책을 읽는 내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잠실 올림픽 경기장을 달리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라 지워지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