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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심플 플랜에 열광한 적이 있던 독자라면, 스콧 스미스라는 작가의 존재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심플한 스토리이면서도 임팩트가있는 세계적인 스릴러의 걸작이다. 샘 레이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큼은 너무나 인상적이여서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기 때문에, 몇년이 지난 지금도 한장면 한장면이 확실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이후로, 스콧 스미스의 차기작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렸다. 그리고 체념을 넘어서 이미 포기해 버린 지금, 그 전설같은 스릴러 작가는, 결국 돌아왔다. 상상도 못한 터무니 없는 소설을 들고서 부활한 것이다. 두번째 작품을 쓰려고 몇번이고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각본 쪽으로 옮겨 갔었던 작가는, 그렇지만 그 각본조차도 어느 것하나 완성시키지 못한채 다시 소설쓰기를 시작하고,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 폐허라고 한다. 심플플랜과 폐허 사이의 그 안타깝고도 지루한 공백기간이 무려 13년이다.
폐허는 공포다. 확실하게 소름끼치고 무섭다. 그렇지만 그 공포는 호러라는 장르에 따라다니는 초현실적인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이서, 몸서리쳐질 정도로 실감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이 작가의 점착력 강한 디테일 묘사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병적이라고 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비단 그것은, 안구에 들러붙어 버릴 것처럼 생생하고 집요한 장면 묘사 뿐만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따르는 인물들의 심리변화와 행동 하나하나에도 해당된다. 마치 일행 안에 내가 은근슬쩍 끼여있는 것처럼 착각해버리게 만드는 생생함은, 이야기 속의 사소한 일 하나에도,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반응하게 한다.
불가항력인 극한의 상태에서 의외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불가해한 마음과 돌출행동으로 인해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리고 꺾이면서 느끼게 되는 광기와 스산함은, 어떤 종류의 천재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작은 것에서 부터 비롯되지만,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 하나 겹치고 쌓여 가는동안,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등장인물들의 공포, 이성이 결여되어 가는 불안정한 심리상태. 그 부분의 묘사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도저히 평범다고는 할 수 없다. 정말로 작가는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아닐까. 대작가인 스티븐킹이 그 월등한 재능을 극찬했다는 사실에 납득이 갈 수 밖에 없다.
폐허는, 휴가를 온 대학생들이 휴양지에서 알게 된 친구의 동생을 찾기 위해 정글의 외딴 곳에 있는 페허로 들어가, 그 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를 마주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되는 일종의 집단 공포소설이다. 멕시코, 마야족 원주민의 부락 안쪽에는, 인디아나 존스가 등장할 법한, 고대의 폐허가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 곳은 너무나도 이상한 곳이다. 수상하고 불길한 징조들. 몇 차례에 걸친 이 곳 사람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제지. 과연 그 곳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엇이 얼마나 위험하기에 이 들은 일행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일까.
폐허라는 제목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말 그대로 폐허 그 자체를 상상하게 하는데, 실제로 등장 인물들이 맞부딪히게 되는 것은 폐허라고 하기보다는 어느 특수한 자연 환경과, 그 곳에만 존재하고 있는 불가사의하고 강력한 정체 불명의 적이다. 뜻밖일 정도로 독창적인 적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등장 인물들은 그들 스스로 가혹한 상황을 만들어 간다. 외부의 강대한 적이라는 존재 이상으로, 자멸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내부의 적 쪽이 더 벅차게 느껴지는 점은, 그 심플 플랜의 작가 스콧 스미스의 건재함을 확인한 듯해서 자꾸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한다.
특별히 호러 그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심플 플랜을 쓴 작가의 차기작이라는 사실에 집착해서, 소설 여기저기에 스콧 스미스다운 부분을 발견해 내는 기쁨을 느끼면서 읽어 내려갔다. 압도적인 흡입력과 탄탄하고 안정된 구성, 심플하고 일관성있는 스토리,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하는 실감나고 생생한 묘사. 넘칠정도로 기대에 부응해주는 짱! 재미있는 소설이였던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스콧 스미스와의 판타스틱한 재회에 자축이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