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철도원, 칼에지다 등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들의 작가, 아사다 지로 최신 단편집.
다리밑 구두닦이 노인과 중견기업 사장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슈샨보이타인에 대한 배려와 안타까운 향기로 가득 찬 7편의 주옥같은 이야기들...

인섹트
다소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시골뜨기 청년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 '도쿄의 예절' 에 익숙치 못해, 소외감을 맛보는 청년의, 외로운 결단이 가슴을 울린다.

쓰키시마 모정
쓰키시마 모정의 무대는 에도시대의 유명한 유곽지역인 요시와라, 때는 1900년대 초. 고향 마을에서 요시와라로 팔려 온 소녀 미노는 어느덧, 요시와라의 기세루에서 이코마라는 가명의 기녀로 서른의 나이를 맞이했다. 돈을 주고 이코마를 유곽에서 빼내주겠다는 낙적이야기가 두번이나 무위로 돌아가고 나서, 뒤늦게 찾아온 3번째 기회. 자유의 신분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버린 이코마. 그러나 , 그런 이코마의 앞에 드러나는, 슬픈 비밀...

'난 당신 덕분에, 겨우 사람이 될 수 있었어.'
단골손님의 단념과 배신으로, 행복과는 인연이 멀었던 미노가, 간신히 목전에 둔 진정한 행복. 그런 상황에서의 미노의 결단은 고상하고, 고귀하고, 그리고 안타깝다.
'나 말이야,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절실히 알게 되었어. 그렇다면 내가 깨끗한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거야.'

슈샨보이
표제작. 미스터리 터치가 가미된 감동적인 이야기. 60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정리해고 하고 나서,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은행을 나온 쓰카다가 재취직한 자리는, 자수성가한 어느 중견기업 사장의 운전기사. 사장의 인품을 존경하던 쓰카다는, 어느 날, 구두를 닦으러 일부러 인적이 드문 다리 밑까지 찾아가는 사장의 뜻밖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외톨이로 불탄 잿더미 위를 방황하고 있던 소년을, 남자는 데려다 길렀다. 남자는 아이에게,
'세상 탓을 하지 마라. 남 탓도 하지 마라. 부모 탓도 하지 마라.'
'하지만 내 탓도 아니에요.'
'아니. 네 탓이야. 남자라면 모든 게 자기 탓이야.'
아무도 동정따위 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등을 돌려보아야,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화도 사그러든다. 그런 무뚝뚝하고 서투른 애정이, 마지막에 등장하는 편지에서 한층 가깝게 전해져 온다. 눈물이 샘솟게 하는,
'고맙다, 고마워'
어떤 신파극을 보고서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렸던 적이 있었는지... 울지 않고 있을수가 없다.

제물
오래 전, 괴롭힘을 당하던 끝에 전 남편에게서 도망쳐 나왔던 하츠에가, 그 전 남편의 장례식을 찾아가는 이야기. 뿌리친 과거와 다시 마주보았을 때, 하츠에의 가슴을 꿰뚫는 것은.... 입밖으로 낼 수 있었던 말은, 단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의 무게감이 가슴을 내리 누르기 시작한다.

눈보라 속 장어구이
전 제국 육군출신의 사단장과 전쟁을 겪지 못한 일직 부관. 배경은 1960년대 후반 훗카이도 자위대 주둔지. 눈이 퍼붓는 한밤 중에, 장어구이를 안고 주둔지로 돌아온 사단장이 들려주는 경험담. 인간의 존엄과 최고의 맛을 내는 뱀장어를 둘러싼, 안타까운 이야기에, 또 다시 가슴이 아련해져 온다.

망향
장례의 형태는 고인의 인품을 말해준다고 한다. 그 인생을 말해주는 게 아니고 품성을 말해준다는 의미다....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망향역시 따뜻한 감동이 떠도는 한 편이다. 의대에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마사코 에게 '할머니의 임종'이라는 비보가 날아든다. 마사코는, 거식증을 일으키는 엉뚱한 사유로 낙제위기에 처해있는 자신의 학생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데...  차례차례로 나타나는 뜻밖의 조문객들로 인해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생전의 할머니의 성품을 엿보게 된다.

해후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은 도키에의 애달픈 사랑이야기. 불행한 성장사, 그리고 빛을 잃어 가는 눈이 가져온 아픈 추억.... 그 슬픈 시절을 넘기고, 지금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도키에의 사랑하는 이를 위한 배려가 순간,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행복을 찾아내 가는, 도키에의 강함과 씩씩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7편의 작품이 모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그려지는 방식이 너무나 제각각이다. 7가지 모습의 서로 다른 배려심이 어느 것 하나랄 것 없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진부한 신파극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맛있고, 그 여운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는, 아사다 지로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절대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읽지 말아야 할 책이다.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거리낌없이 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별개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역시, 조용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키는데로 실컷 울고, 느끼면서 읽는 편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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