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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지휘고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살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틀림없이 그럴것이다. 부정할수 없는 진리이건만 언젠가는 맞이해야할 이 순간을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며 경계한다. 어느날 갑자기 나라는 존재가 이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우울하고 서글퍼진다.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고민을 수많은 종교와 미신등에서 이야기하는 사후세계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해소하고자 하지만 그 어느것도 정답이라고 할수 있는것은 없다. 그저 믿음의 문제일뿐이다. 그 끝모를 불확실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의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부풀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존재중에 하나가 이 세상에서의 삶의 기한이 다된사람을 사후세계로 데려가기 위해서 나타난다는 저승사자일 것이다. 물론 한국사람이 떠올리는 검은옷과 갓을쓴 전형적인 저승사자의 차림새는 우리민족의 정서가 만들어낸 모습이겠지만, 그 생김새만 다를뿐이지 전세계 어느 문화권에라도 망자를 맞이하러 오는 사신의 대한 믿음은 별 차이가 없는것 같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찰리의 역할은 저승사자이다. 삶과 죽음을 직접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후에 남겨진 망자들의 영혼의 그릇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 영혼의 그릇은 망자가 죽기전에 사용하던 지팡이일수도 있고, 장식품일수도 있으며, 때로는 생전의 망자를 글래머로 보이게 만들어 주었을 가슴속의 보형물일수도 있다.
특이한것은 찰리를 포함한 저승사자들은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인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그들의 주위에 어느날부터 원인모를 죽음이 늘어나고 붉게 빛나는 영혼의 그릇들이 그의 눈에 보이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한편으로 저승사자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는 몸이 된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와 죽음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한 존재같은 것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코미디다. 기상천외한 시츄에이션과 황당무계하고 유머러스한 대화들이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한다. 다만 이런 류의 블랙코미디가 유독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하나, 대사하나가 가지고 있는 웃음의 뉘앙스를 어떻게 캐치하느냐에 따라서, 즉 코드가 맞느냐 안맞느냐에 따라서 더티잡은 최고의 블랙유머소설로도, 그저그런 소설로도 받아들여질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