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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이야기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67
스티븐 킹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셀이 초장부터 아비규환, 상당히 스펙터클한 느낌이였던데 비교하면, 리시이야기의 출발은 매우 정적이다. 무언가가 일어날것 같으면서도 잠잠하지만, 그렇지만 일어나지 않을리가 없다는 믿음이 초중반의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그러면서 담담히 흘러가던 현실세계의 이야기가 어느 사이엔가 초현실적인 이야기로 바뀌어져 있는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인 리시 랜던은 중년의 미망인. 퓰리처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저명한 작가인 남편, 스콧이 타계하기 전까지,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리시는 언제나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리고, 남편과 사별한지 2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그의 유품이나 유작의....즉,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리시의 현재 모습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명인사인 남편과 눈에 띄지 않는 아내라는 빛과 그림자같은 관계지만, 실은 아무도 모르는 끔찍한 과거가 있었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역시 둘은 좀비인걸까 등등 멋대로 결말을 예측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런데 현실세계 저너머에 이런 어둠의 공간을 창조해 놓았을 줄이야. 현실에서 맴도는 동안에는 당연히 평범한 상상력으로는 결말은 물론이고 어떤식의 이야기가 될런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비밀은 겹겹이 칠해져 있어서 처음에는 완전 백짓장같은 상태이지만 뭐지? 뭐지? 하는 동안 조금씩 킹이 만들어낸 세계관이 디테일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십수년전, 관중들 눈앞에서 저격당한 스콧이, 삽자루를 휘두른 리시의 재치로 목숨을 구한사건.
아직,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을 뿐인 무렵에 데이트에 늦은 스콧이 깨어진 유리조각으로 자신의 팔을 그어 자해하고 피투성이가 된채 리시에게 사과한일. 어린나이에 목숨을 잃을수 밖에 없었던 스콧의 형, 폴에 대한 추억. 정신이 이상해진 리시의 큰언니 아만다. 그리고 리시를 노리는 새로운 스토커.....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면서, 리시의 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로 날아가, 그 추억속에서 스콧이 말하던 그의 유년시절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과거, 그리고 더 먼 과거. 시공을 교묘하게 다루면서, 킹은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시간과 장소' 를 창조해낸다. 자줏빛커튼의 저 편, 새소리가 들리고 흐드러지게 핀 꽃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는 그곳은 도대체...
종반으로 갈수록 점점 초현실적인 세계관이 드러나고 판타지 요소가 강해져, 과연 어떤 장르의 범주에 들어가는걸까 이 작품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고민했지만, 여장부인 리시의 모습을 보는것이 즐겁고, 유머러스한 대화를 듣고 있는것이 또한 즐겁고, 무엇보다도 킹의 새로운 작품을 읽고 있다는 그 자체가 주는 흥분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공포라던가 판타지라던가 카테고라이즈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굳이 뭔가 가져다 붙이자면 '로맨스호러'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으려나. 이것은 부부의, 부자간의, 그리고 형제자매의 사랑의 이야기. 과연 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