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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야심에게는 재능이 여럿 있었다. 타고난 매력, 언어 구사력, 또 회색 눈을 갑자기 크게 뜰 수 있는 능력까지. 누구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신기하게도 최면에 걸린 듯 누가 말하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알이 없다. 평범한 뜻은 아니다. 야심은 용기가 상당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이스탄불에서도 드문 생물체였다. 환관이었던 것이다." (12쪽)
2007년 미국 탐정 작가 클럽상 최우수 장편상(에드거상) 수상작입니다.
19세기의 이스탄불을 무대로 한 이색적인 미스터리입니다. 이스탄불이라고 하면 유럽과 중동의 중계점이 되는 도시, 일찌기 지중해의 대부분을 판도에 넣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런 대제국도 19세기 무렵에는 쇠퇴일로를 걷게 되고 서양의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는 대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지리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지극히 미묘한 위치에 놓여있는 이스탄불의 거리를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어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표면상의 주인공은 환관인 "야심"입니다. 야심은, 최고 권위자인 술탄이 참석하는 열병식 직전에 발생한 병사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의뢰받습니다. 환관인 그는 왕궁, 할렘같은 권력의 중추에서부터 거리의 뒷골목까지 이스탄불의 모든 곳에서 이름이 통하는 존재입니다. 못 어울리는 곳이 없는 신분인 만큼, 이스탄불 거리 곳곳을 누비며 온갖 장소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들을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계급사회였던 당시의 이스탄불을 구석구석까지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한 가이드로서, 환관이 가진 그런 특수성은 최적의 빛을 발합니다. 모든 설명을 일일이 주석의 형태로 삽입했다가는 미스터리로서의 긴박감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야심이라는 인물은, 생소한 장소를 무대로 한 역사미스터리로서 있을 수 있는 이러한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서 탄생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그가 안내하는 이스탄불의 거리는 요소요소마다 이국적인 매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빈번한 장면 전환입니다. 모두 132개의 비교적 많은 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이야기는 장이 바뀔 때마다, 장면이 바뀌거나 시점이 바뀌거나 합니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다소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반면에, 각각의 장에서 그려지는 정경 하나하나가 말하자면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되어,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소설 속의 이스탄불은 보다 세세하고 말 그대로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난 듯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주인공의 시점을 벗어나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주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야심이 아니라 이스탄불이라는 거리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이 소설에는 야심이 요리를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요리라는 것 또한 그 나라의 문화를 독자에게 상상하게 하는데 안성맞춤입니다. 나오는 요리는 모두 먹어본 경험은 없지만 이스탄불을 찾아가보고 싶게 만드는 하나같이 맛있어 보이는 것들 뿐입니다. 게다가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요리가 미스터리의 맛을 내는 향신료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요리의 세계 조차도,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따라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전통의 맛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이런 이스탄불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나 시대상은, 왕족이나 군대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생활에 까지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몇번이고 닥쳐오는 위험을 빠져 나가면서 조금씩, 그렇지만 착실하게, 사건의 배후에 놓여있는 음모에 접근해 가는 주인공 야심의 활약은 통쾌합니다. 환관이라는 특수한 입장에서 오는 고뇌가 야심이라는 캐릭터에 무게감을 더하면서, 이스탄불이라는 이국의 정서가 흘러넘치는 도시를 미스터리의 무대로서 멋지게 되살려 낸 그 구성에는 감탄할 따름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마치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위한 게스트처럼 느껴지는 감도 없지는 않지만, 야심을 포함한 몇몇 캐릭터들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미스터리로서는 변종인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우성인자에 의한 변종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진화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