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금 미도리의 책장 11
쓰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할머니의 유품을 계기로 "고스케"라는 악기 장인을 알게 된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루코"의 이야기. "쓰하라 야스미"의 작품치고는 의외로 순애 소설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데도 실제로 읽고 나서는 꽤 놀랐다. 분명히 쓰하라 야스미의 문장이 맞지만, 그래도 "진짜 그 작가가 쓴 소설 맞아?"라는 느낌. <아시야가의 전설>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묘사까지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드는 탐미적이라 할 만한 문장이였던 것이, 평범한 현실로 무대를 바꾸면 이렇게까지 서정미 듬뿍 넘치는 문장이 된다. 어느쪽이든 대단히 아름다운 문체라는 데는 변함없다.

죽은 할머니의 유품 중에서 할머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의 일기를 발견한 사토루코는, 그것을 시인의 손자인 고스케에게 전해준다. 악기 장인인 고스케는 일기의 답례로 사토루코에게 작은 붉은 수금을 준다. 그 후,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사토루코는 고스케의 거처에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애정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어쩐일인지 둘다 손을 내밀지 못한다. 서로를 밀어내는 고스케와 사토루코의 모습이 매우 안타깝다. 그 거리감의 이유가 두 남녀의 서투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담담하면서도 농후한 문체는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대사가 의도된 것인지, 작가의 원래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끊기는 대사가 신선하다. 그 끊기고 난 뒤의 여운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느낌. 불필요한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거나 심지어는 작은 사랑의 단어 한번 입에 올리는 일이 없다. 대신에 그 장소에 흐르는 기류를 가늠하고 또 가늠한다. 고스케와 사토루코의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게 되고,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억제된 정열에 두근두근한다.

공명하는 이야기. 그런 인상을 받았다. 악기가 공명 하듯이, 고래가 서로 공명하듯이, 결코 많지 않은 에피소드 하나하나마다 그 울림이 다음에서 다음으로 전해져 간다. 수금 소리, 고래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이 소리를 그려내는 것이 대단하다. 소리의 묘사가 아니라 소리가 들려오는 장소에 떠도는 공기와 소리를 듣는이의 감정을 활자로 옮기는 것만으로 악기의 음색이나 고래의 노랫소리를 느끼게 한다. 오감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련의 결말이나 대단원의 해피엔드가 아닌, "그리고 인생은 계속된다...."의 패턴이지만, 그런 결말이 짧은 이야기 안에서 큰 여운을 남긴다. 안타까운 여운을 곱씹고 있는 듯한 씁쓰레함. 감각적인 여러 장면들이 사진처럼 마음에 남는다. 진부하지 않은 극상의 연애 소설. 붉은 수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톱으로 튕겨보고 싶어진다. 정말로 그 소리를 한번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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