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림포스 Olympos
댄 시먼스 지음, 김수연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9월
평점 :
무려 천 페이지 하고도 백페이지 가까이나 더 초과한 묵직한 무거운 양장본. 마치 근력 트레이닝을 부수적인 효과로 생각하고 만들어진 듯한 압도적인 분량이지만, 여기에 전작인 <일리움>을 더하면 다시 이천 페이지를 초과해 버리는 대작 스페이스 오페라 시리즈다. 전작인 <일리움>을 이미 읽었거나, 저자의 다른 작품을 원서로 접한 적이 있어서(아, "테러" 읽고 싶다) "댄 시먼스"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다른 말 필요없이 <올림포스> 나왔다고 알려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광대한 우주나 혹성을 무대로 운명에 맞서 싸워 필사적으로 살아 남으려 하는, 그런 개개의 인간들의 큰 생을 그려내는 시먼스의 스타일은 올림포스에 와서도 여전하기 때문에 역시 시먼스다 하는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 댄 시먼스의 작품을 한번도 읽은 적 없고 너무 두꺼워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마디로 아주 재미있으니까 일단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끝내고 싶지만, 그건 너무 불친절한 듯 하고 나름대로 올림포스(일리움도 포함해서)를 읽고 즐거웠던 포인트를 몇가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아득히 먼 미래, 첨단 과학의 힘을 빌어 강화된 그리스의 신들이 지구화 된 화성의 올림포스산에 정착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그려진 것과 같은 일리움(트로이)에서의 인간들의 전쟁에 끼어든다. 이 첫번째 파트의 설정이 우선 훌륭하다. 도대체 왜, 누가 신들을 불러 이런 전쟁을 시키고 있는 것인가. 미래에 되살아난 학자 "호켄베리"는, 이 전쟁이 서서히 "일리아스"에 쓰여져 있는 전개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을 깨닫는다. 인간들이 신들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신들 자신이 첨단과학기술로 강화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 그는 트로이의 숙적 "헥토르"와 손을 잡고 신들과의 항쟁을 시작한다.
어디선가 닮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리움/ 올림포스가 일리아스를 모티브로 해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학기술을 빌려 신화를 재현하는 것은 SF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다. "일리아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이 이야기가 전혀 낮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수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책, 소설등을 통해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대서사시를 수없이 간접체험해 온 덕분이다. 막상 읽어보면 오히려 친근한 느낌마저 가지게 된다. 신과의 전쟁이란 결국, 한 사람의 생명, 혹은 그 존재가 너무나 간단하게 유린당하는 이 부조리한 "운명"과의 싸움과 다름없다. SF의 주제로는 이보다 더 심오할수 없다. 이 주제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일리아스뿐만 아니라, 일리움/ 올림포스를 통해 환골탈태 하고 있는 문학작품은 그밖에도 많이 있다. 지구에 남겨진 인류가 소생을 반복하면서 향락적인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제2 파트에서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다>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목성의 로봇들이 양자 이상의 수수께끼를 찾아 화성으로 향하는 제3 파트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프루스트"나 "셰익스피어"에 대해 상당히 깊이까지 파고들어 이야기한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템피스트> 는 <일리아스>나 "셸리"의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Prometheu Unbound>와 함께 이 작품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꼭 읽어 두고 싶은 작품이다. 물론 이런 고전들을 미리 읽어두지 않아도 올림포스를 즐기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서양의 고전문학들도 덩달아 찾아 읽어보고 싶어지는 맹렬한 독서욕구에 휘말려 버린다.
까다로운 논리는 배재하고, 박력 있는 묘사, 템포 좋은 전개로 꿀떡꿀떡 읽어 삼키게 하는 것이 시먼스의 특색이다. 올림포스에서는 특히 전투장면의 묘사가 압권. 검과 창만으로 싸웠던 트로이 전쟁을 다루고 있으므로 당연히 몸과 몸이 부딪히고 피와 살이 흩날리는 강렬한 싸움이다. 마치 우락부락한 근육들의 섬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그려지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대에 쓰여진, 그것도 SF소설에서 오래된 대서사시의 느낌을 이렇게까지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대단하다. 이것을 위대한 고전문학에 대한 왜곡이라던가, 패러디로 점철된 소설이라 폄하할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또 어떻겠는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으면 그런 논쟁은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여하튼 이상 일리움/ 올림포스의 아주 일부를 소개해 보았지만, 그밖에도 다양한 시점에서의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역작이며, 독서의 즐거움을 한계까지 만끽할 수 있는(적어도 장르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