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물 검역소
강지영 지음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시대의 얼리어답터라는 발상처럼 유쾌함과 기발함으로 가득찬 이야기다. 완전 웃기다. 얼마전 저자의 첫번째 작품집인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으면서 신인작가 같지 않게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블랙유머에 감탄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굿바이...가 심각한 상황에서의 허를 찌르는 유머가 일품이었다면, 이 책 <신문물 검역소>는 아예 유머가 그 중심에 있다. 코믹미스터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초장부터 배꼽잡는 장면의 연속인데 막판에 가면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결말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 나오고 있는게 똥인지 아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더니 그렇게 나온 아이가 바로 양반집 자제인 주인공 함복배, 날 때부터 울지도 않고 열 살이 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아 당연히 벙어리인줄 알았더니 아버지 친구분과 그 따님 앞에서 느닷없이 첫대사를 친다. 말을 못하는게 아니라 그동안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안한거란다.

과거시험에 달랑달랑 급제한 함복배는 제주도에 있는 "신문물 검역소"의 소장으로 부임받아 신문물의 용처를 알아내어 임금님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일을 맡게 된다. 지금으로 보면 별 것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수 있는 물건들이지만, 이런 생필품들조차 조선시대에는 모두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일터, 얼리어답터가 되어 진지하게 이리저리 사용해 본뒤에 그 용처를 유추해내지만, 생각해낸 용처라는게 하나같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브래지어(불아자)를 갓대신 뒤집어쓰는가 하면, 칫솔(치설)이 졸지에 치질잡는 의학도구가 된다. 망가뜨린 신문물의 용처를 임의로 바꾸어 보고하기도 하고(그런데 바뀐 용처도 나름대로 그럴듯해서 웃음이 나온다.), 난폭한 코길이 선생과의 조우, 심지어는 새로운 신문물을 발명해 내는 경지에 까지 오른다. 신문물 뿐만 아니라 실존인물인 네덜란드 출신의 조선인 박연이 또 매력적. 해맑은 얼굴로 귀여운 짓을 서슴치 않는데 이 박연의 대활약이 볼만하다. 말끝마다 "막말로~"를 입에 달고 사는 관노 영보의 말투도 포함해서 보이는 모든 장면들이 좌충우돌 요절 복통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그저 웃기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장면이 나중에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시작은 코미디이지만 뒤로가면서 미스터리로서의 본질을 드러내는 구성이 노련하다. 물론 고증면에서는 완전히 삼천포로 빠지므로 혹시라도 역사서 비스무리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그건 조금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배꼽잡는 소설이긴 하지만, 저자의 지금까지의 다른 단편들에서처럼 등장인물을 가혹하게 다루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딱히 잔혹하다 할만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작품속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저임금을 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처럼 혹사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개그만화에서라면 등장인물이 어떤 꼴을 당해도 코믹한 그림을 보면서 마냥 웃어넘길테지만, 활자만으로 내 상상력에 의지해서 장면을 연상하다보면 때로는 마치 잠자리 날개를 뜯어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조금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부분이 살짝 있다.

전체적으로는 작가가 워낙 아이디어가 넘치고 할말이 많아서인지, 전개가 조금 서둘러 진행되는 감은 있다. 따라서 진중하게 경치를 둘러보기보다는 배꼽 쥐고 스피디하게 내달릴만한 이야기. 기발한 발상에다 코믹센스 넘치는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코길이 선생 부분만 어떻게 감당이 된다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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