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소문과 다르지 않은 걸작.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고품격의 작품집이었다. 정통적인 괴기-호러 소설은 아니고, 또 스티븐 킹으로 대표되는 모던 호러라 하기에도 어딘가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호러로서는 한없이 보통 소설의 촉감을 가진 이색 단편"이라고 할까. 우정이나 애정을 그린 수작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호러라 할만한 부분이 정말이지 아예 없는 작품도 있다. 록음악의 향기가 물씬 나는 전작 하트모양 상자와 비교해도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다. 아버지인 "스티븐킹"보다 오히려 "레이 브래드버리"나 "리처드 매드슨"같은 환상소설 작가들을 더 닮은 듯 하다.

단편집이므로 각각의 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쓰지 않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호러소설 편집자가 조우하는 공포를 그린 정통파 호러 <신간 공포 걸작선>(닐 게이먼이 그 이미지처럼 소설 속에서도 나이스 가이로 묘사된다), 영화를 향한 사랑을 서늘한 터치로 그린 아름다운 작품 <20세기 고스트>, 풍선 인간이라는 기이한 병에 걸린 친구와의 마음 따뜻해지는 우정 이야기 <팝 아트>, 카프카의 "변신"과 B급 호러영화의 합체, 카프카의 변신의 호러버전이라 할만한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 (벌레가 되어 버리는 주인공의 심리와 정신세계의 묘사가 너무 뛰어나다), 좀비 영화의 엑스트라로서 재회한 옛 연인들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재생의 이야기 <바비 콘로이, 죽은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 이 작품집 안에서 가장 긴 중편으로 자폐증이 있는 남동생이 창조한 거대 구조물이 공연히 무서운 <자발적 감금>등, 언뜻 이 6작품이 떠오르지만, 인상에 남는 작품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작품 사이의 격차가 크지 않고 15편이 모두 수작이라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그 중에서도, 굉장한 것은 역시 <팝 아트>. 일반적인 소설에서라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을(그럴만도 한 것이 이 병에 걸리면 사람의 몸이 행사장 앞에 있는 흐느적흐느적 풍선 인형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고무 풍선 인형과 고독한 소년의 애절함이 감도는 우정 이야기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올 타임 베스트급"의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만을 위해서 이 책을 사도 손해는 없음! 그려져 있는 것은 코메디가 아니라면 기괴함에 가까운 광경일텐데, 어째서 이런 따뜻하고, 안타깝고, 투명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이것은 호러가 아니고 청춘 소설, 기상천외한 청춘소설이다.

<바비 콘로이, 죽은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도, 학창시절 커플 사이였던 두 남녀가 B급 좀비영화 촬영 현장에서 시체분장을 하다 재회한다는 이상한 설정만 제외하면 보통 소설에 가깝긴 하지만, 인생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이 좀비영화를 촬영한다는 이상한 시추에이션을 통해서 다시 희망을 찾아내는데 도달하는 그 스토리텔링이란!(그녀의 마음의 변화가 너무 당돌한 것이 약간 난감하지만) 원츄!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과 공포,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이 최적의 배합으로 버무려져 있는 확실히 출중한 작품집이지만, 무엇보다도 신인 작가의 처녀작품집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필치에 놀라게 된다. 기괴한 상황에 몰려 파멸로 향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공감대를 느끼게 하는 여느 장르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품격"이 있다. 군데군데 선배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는 부분도 호감도를 높인다. 역시 스티븐 킹의 아들답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후광이 오히려 거치적 거린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작가 "조 힐", 앞으로도 계속해서 필히 관심을 가져 할 작가다. 스티븐 킹의 둘째 아들이라는 화제성을 빼도 올해 반드시 읽어야 할 1권. 전작인 "하트 모양 상자" 상자는 이 작품집과 또다른 맛이 있으므로, 안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쪽도 체크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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