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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하는 남자
오자키 마사야 극본, 하시구치 이쿠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지진희, 엄정화가 주연한 TV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소설판입니다. 그 전에 앞서 후지 TV에서 제작된 원작 드라마가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죠. 일본판의 주연은 꺽다리 아베 히로시였습니다. 사실 두작품 모두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결혼 못하는 남자>는 이 소설이 처음인 셈이네요.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지만, 한국판의 경우는 간혹 지나다니면서 지진희, 엄정화 두 배우가 좌충우돌하는 시끌벅적한 몇몇 장면을 언뜻 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두 배우의 이미지를 오버랩하면서 읽을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경우는 능력있지만 눈치 없는게 의외로 지진희씨의 이미지에 딱이네요. 제가 PD였어도 이 배우를 캐스팅 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일본판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판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만 보아서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굉장히 어필할 것 같은 이야기인데 말이죠.
이 남자, 능력있는 건축가에 수입좋고, 키도 훤칠합니다. 조건만 놓고 보면 어디 한군데 빠지는 곳 없는 잘난 신랑감이자 여자들이 들러붙어서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남자인데, 혼기를 한참 넘기고도 여전히 혼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남자는 결혼을 못하고 궁상맞게 혼자 지내고 있는 걸까요?
제목은 <결혼 못하는 남자>이지만 어떻게 보면 못한다기 보다도 본인이 결혼에 관심이 없습니다.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 들여놓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혼자 스테이크를 구워 와인과 함께 고기맛을 음미하면서 행복해 하고, 음악은 오직 클래식 음악만을 듣습니다. 혼자서 장도 잘보고 살림도 잘합니다. 심지어는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도 이 남자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의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혼자가 편하고 자연스러워 이성에 대한 미련이 없습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너무나 사랑하는 섬세하다면 섬세한 영혼이지만 대신에 그만큼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누군가에게 속박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부족합니다. 옹고집에 융통성 없기로는 세계 최강, 요즈음 초식남이니 건어물녀니 하는 말들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초식남의 전형입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건축 사무소의 사람들, 이웃집 여자, 노처녀 여의사 등등 주변인물들과 엮어내는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경우는 여러 인물, 사건들을 옮겨다니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지만, 소설의 경우는 이 남자가 화자입니다. 모든 것을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죠. 인간관계에 서툴러 뻔히 보이는 타인의 신호조차도 본인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까탈스럽고 엉뚱한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이 읽는 내내 미소짓게 만듭니다. 네 굉장히 귀여운 남자입니다. 글쎄요, 이런 남자가 실제로 옆에 있다면 인상을 찌푸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소설 속에서 만큼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귀여운 소년 같은 인상이네요. 지진희를 떠올려 보세요.
여의사와의 러브 스토리 같은 경우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이 남자에게는 남녀관계의 모든 것이 소귀의 경읽기와도 같습니다. 이성이 보내오는 어떤 신호에도 둔감합니다. 밀면 당기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한쪽이 밀면 이 남자 그냥 밀리거나 맞받아쳐서 더세게 밀어버립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남녀관계와는 다른 엉뚱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사람들과의 이야기지만, 잠깐 등장하는 옆집 아가씨의 애완견과의 에피소드가 또 굉장히 즐겁습니다.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남자의 심경의 변화라는 면에서 볼때 이 강아지가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드라마가 제작된 것이 아니라 반대의 경우입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나서 "하시구치 이쿠요"라는 작가에 의해 노벨라이즈 된 것이지요. 줄곧 드라마를 시청해 온 사람이라면 종영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지 못했어도,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드라마가 할 때는 별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서야 한번 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거든요. 따뜻하게 유쾌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