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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달력 1
장용민 지음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작가라 한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만큼 제법 평도 좋았던 모양이고 입소문도 익히 들어 그 제목만큼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읽어본 적은 없다. 따라서 전작과의 비교는 불가하지만, <신의 달력>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읽고 난 소감만으로 이야기 하자면,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가 있었어?" 바로 이거다. 막힘없는 상상력과, 전혀 날림이라 생각되지 않는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재미"라는 면에서 가히 쇼킹한 수준이었다. 아직도 국내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을 때면 완성도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을 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찾는 고약한 버릇이 발동을 하곤 하는데, 이 작품만은 모든 스위치를 다 꺼놓고 정말로 순수하게 즐길수 있었다.
<다빈치 코드>의 대히트 이후에, 언제부턴가 팩션이라는 명함을 든 소설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재는 거의 다 거기서 거기.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아니면, 동정녀 마리아의 비밀, 성배, 성수의의 비밀, 이제는 어지간히 잘 쓴 작품이라 해도 질리지 않고 끝까지 읽어낼 재간이 없을 정도다.
다빈치 코드가 워낙 세계적인 초베스트셀러인 만큼,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다빈치 코드보다 이 작품이 훨씬 났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훨씬 흥미진진한 방향으로 몰아간다고나 할까. 완전히 색다른 느낌이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내내 그쪽 동네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그 정서라는 면에서 어딘가 우리나라 독자들과 코드가 아주 잘 맞는다. 책장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일본의 유명 만화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라는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신의 달력을 읽는 내내 그 작품을 떠올리곤 했다. 동양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문화. 몬스터의 경우를 보면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하고 있고, 유럽식 동화를 모티브로 차용하고 있는데다,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외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서양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양이 아닌듯 친밀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일본 작가의 생각과 그림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동양적 정서가 우리에게도 어필했던 것이 아닐까. 이 작품도 바로 그렇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속 서양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말하면, 처음 기획단계부터 세계진출을 염두에 두고 쓰여져 있다는 이 작품이 외국으로 진출했을 때에도 과연 좋은 반응을 얻을수 있을까.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거야말로 오히려 미지수다.
끔찍한 범죄로 어린 아들을 잃고 탐정이 된 주인공과 어쩐일인지 그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정체불명의 의뢰인, 그리고 의뢰인이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베일에 쌓인 인물.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꼬리에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비밀들. 아인슈타인, 콜롬버스, 히틀러, 그리고 마야문명에 이르기까지 세기를 가로지르며 속속들이 드러나는 일련의 역사속 사건들의 진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 방대한 스케일은 때로는 타임슬립 계통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예수"라는 특정 인물에 대한 상상력은 이미 다빈치 코드 이상이다. 걸작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평은 개인적인 것으로 접어두더라도, 그 재미만큼은 철저하게 우리나라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다. 한국작가가 외국의 역사나 문화를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때의 종종 느끼게 되는 왠지 어색함, 역부족, 독자의 손가락이 오그라 드는 현상은 이 작품과는 전혀 관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