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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없는 땅 1 ㅣ 미도리의 책장 9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7인의 사무라이」나,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등이 주연한「황야의 7인」을 감명깊게 본 사람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만한 소설이 나왔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이야기.
베네수엘라의 명문 엘리손도가 소유의 고갈된 유전 지대에서 희토류라 불리는 초전도 물질이 발견되었다. 전해내려오는 전설조차 하나없는 불모의 땅, 그땅이 창출해낼 거액의 부. 독점 채굴권을 미끼로 거액의 부를 손에 넣기위해 획책 하는 당주 베르톨로메오. 그 베르톨로메오와 욕망에 사로잡힌 두 아들, 그리고 정부 베로니카까지 가세한, 혈육간에 피비린내 나는 사투가 벌어진다.
한편, 산타마르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단바 하루아키는, 소장의 음모로 제9 잡거방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곳은 수감자가 10명을 넘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죽어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계획을 꾸민 자는 칠레 혁명운동 투사인 가지 시로. 콜롬비아 마약 밀매 조직으로부터 강탈한 2000만 달러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파트너인 단바였다. 단바는 가지의 계획대로 탈옥에 성공한다.
그런가 하면, 교주 막달레나 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한 무리의 콜롬비아 난민들이 자신들만의 무정부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엘리손도가의 고갈된 유전 지대로 몰려든다. 마리아는 예언한다. 이 땅에서 곧 축제가 시작된다고.
운명에 이끌리듯이 엘리손도가의 고갈된 유전지대로 모여든 각기 다른 입장의 사람들. 막달레나 마리아의 예언대로 그들은 한데 엉켜 피의 축제를 벌이기 시작한다.
제42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장편상 수상작. 남미 3부작중 하나로 1988년에 발표. 1, 2권 토탈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불만의 여지가 없을만큼 재미있었다.「후나도 요이치」의 이름은 1980년~1990년대를 주름잡은 모험소설 작가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역시 듣던대로의 장대한 스케일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묵직한 스토리와 엄습해오는 폭력, 혈족끼리의 암투, 당시의 남미 사회의 정세와 베네수엘라가 겪은 암흑사의 한 단면을 세세하고 진지하게 그려내는 이야기는, 그 두툼한 분량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에 쩔어있다.
역사라는 큰 체스판 위에서 보면 개인이란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말이 있기 때문에 게임도 성립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에서부터 글도 모르는 하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지만, 모두가 감정이 있고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서로 입장은 달라도 살아 숨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훗날 겨우 몇줄의 문장으로 기록될 이 역사의 이면에는 이렇게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험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소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에 따라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픽션의 성격이 짙은 논픽션과 같은 기분으로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의식하고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중에서「피의 축제」라 불리고 있는 결전은, 후나도 요이치판「7인의 사무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재탕은 아니고, 시대배경이 근현대인 만큼 7인의 사무라이와는 또 다른 맛을 내고 있다. 만약 실제로 모티브를 빌려온 것이 맞다면, 같은 설정으로 원조이상의 매력적인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작가의 수완일 것이다.
적어도 이런 류의 소설중에서는 최고수준의 재미를 느낄수 있었다고 단언할수 있다. 후나도 요이치는 다작을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전설없는 땅을 읽고 난 지금, 저자의 전작품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대표작만이라도 모두 소개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