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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프랑스 범죄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책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책을 이용한 살인이라고 해서 단순히 책으로 때리는 식의 물리적인 방법은 아니고, 혹은 마술적-주술적인 의미의 살인도 아닙니다. 책이 삶이자 모든 것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책의 존재 그 자체가 흉기가 될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광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이 소설은 실재했던 유명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쓰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로맹 가리"라는 작가가 프랑스 문학계의 권위있는 상인 공쿠르 상을 두번이나 수상합니다. 단 한 번 밖에 수상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이 상을 어떻게 재차 수상 할 수 있었느냐 하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을 사용해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문단을 시끄럽게 한 이 사건을 보면서, 이 책의 저자인 피슈테르는 어떤 영감을 얻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위작"입니다. 저자명만 바꾸어서 타인의 작품이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 되기도 하고, 역으로, 실제 본인의 작품은 표절작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본작은 그런 출판계의 어두운 속성을 절묘하게 미스터리 속 트릭으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사장인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작가 니콜라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둘은 학창시절부터 문학을 통해 친밀한 교류를 나누온 사이입니다. 어쩌면 니콜라를 향한 에드워드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남인 니콜라와 수수한 에드워드의 조합. 니콜라가 써내는 작품은 미흡하지만, 에드워드의 손을 거치는 동안 훌륭한 작품으로 재창조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니콜라의 이름으로 출판됩니다. 그 덕분에 니콜라는 명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에드워드는 그런 니콜라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인생에 충분히 만족해 왔습니다. 그런 에드워드가 분노하게 된 것은, 니콜라가 스스로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집필한 한권의 소설때문입니다.
그 소설은 걸작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속 어느 한 장면이 에드워드의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듭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을 모두 부정하고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진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그는 니콜라를 "살해" 하기로 결심합니다. 에드워드는 니콜라를 쓰러뜨릴 도구인 "책"의 제작에 착수합니다. 이 과정은, 극히 기묘한 살해 방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권의 책이 완성될 때까지의 과정으로서도 실로 흥미롭습니다. 극히 치밀하고 복잡한 과정에 비해서는 계획이 너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감도 있지만, 의도한대로 달칵 하고 맞아떨어져 갈때의 쾌감은 상쾌하기 까지 합니다. 정말로 잘 계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의 계획에 운이 따라주는 것도 애초에 철저한 계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이야기의 서두에서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떠들썩한 공쿠르상 수상식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중심에 니콜라가 있습니다. 그런 그가 행복의 절정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질투와 증오 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충분히 범행동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에드워드의 동기가 과연 살인까지 계획하게 될만한 것이였나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광기가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질수 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니콜라의 모델이 되는) 로맹 가리 사건과, 프랑스의 현대사가 소설속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두인물의 인생, 사건, 기묘한 범행수법에 이르기까지 다소 과장된 면들까지도 실로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에드워드가 시도하고 있는 살인 방법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일단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상황은, 작가가 유명을 달리할 만한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합니다. 최근에는 사건의 진상을 일단 서두에서 모두 밝히고 시작하는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도서 미스터리' 혹은 '비블리오 미스터리Biblio-mystery' 입니다. <편집된 죽음>은 이 서브장르의 선배격인 작품입니다. 책향기가 물씬나는 심리 미스터리에 흥미가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