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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길을 걷고 있는데 모르는 여성이 도움을 청해 온적이 있다. 치한을 퇴치해달라거나 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고 작은 패트병의 뚜껑을 좀 열어달라는 것이었는데, 부탁하는 여성의 그 난처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작 패트병의 뚜껑을 열어달라는 작은 부탁일 뿐 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그 여성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모르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만큼 절실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설령 그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고 했던것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수고라고 할 것 까지도 없는 작은 도움만으로 해결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만약에 그런 부탁을 먼저 해오지 않았다면, 나로서는 그 여성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도 목이 마른채로 참아야 했을 것이다.
우연히 얼빠진 은행강도를 붙잡아 영웅대접을 받게 된 에드 케네디는, 사실은 애견인 도어맨과 함께 살고 있는 보잘것 없는 택시기사. 그것도, 나이를 속인채 일하고 있는 미성년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도시 인근의 변두리 출신으로, 이렇다 할 경력이나 대학 졸업장도 없고, 모친에게서는 구박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의 잉여인간이며, 고작해야 하는 것이라고는 친구인 마브, 리치, 오드리와 카드게임을 즐기는 정도로 이렇다할 희망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보이지 않는 신세. 그런 에드에게 어느날 한 장의 카드가 날아든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트럼프 카드. 카드에는 3개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주소지에는 저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카드를 보낸 자가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어떠한 일이 되었든간에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차례차례로 보내져 오는 에이스 카드에는, 에드의 말을 빌리자면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흔히 볼수 있는 트럼프 카드일 뿐이지만 거기에 기입되어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각각의 신상은, 에드가 지금처럼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로 눈치채지 못했을 것들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상황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에드에게 있어서 카드는 이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메신저>는 현실 세계로부터 이세계로 여행을 하는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에드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도, 선택된 용사도 아니다. 등장인물에 따라서는 에드를 "(성스러운)성인" 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의 그는 모든면에 있어서 매우 서투른 인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보통의 독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매우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겁장이며, 심약하고, 이성관계에서도 서투른 에드이기 때문에, "돕는다" 고는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메세지를 전하는 것 뿐이다. 그 메세지는 결코 단순한 조언이나 충고로 그치는 아니고, 때로는 폭력적인 것이거나, 당사자에게는 정말로 둘도 없는 선물이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주 작은 행동만으로도, 사람은 용기를 되찾고,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를 바꾸어 나갈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그 메세지는, 그것을 받은 사람 안에서 확실하게 무언가를 바꾸어 간다. 마치 마법처럼.
카드의 내용은 뒤로 갈수록 그 의미를 알아내기가 어려워지고 에드가 고생 하면서 그것을 추리해 나가게 되는 것도 본서의 특징 중의 하나. 그렇게 해서 찾아내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은 차츰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 범위가 좁혀져 온다. 언제나 에드를 모질게 다루는 모친, 일하려 하지 않는 리치, 인색한 구두쇠 마브, 아무도 사랑하려 하지 않는 오드리...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때야말로 메세지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에드가 전해 온 메세지, 그리고 지금부터 그가 전해갈 수많은 메세지, 모든게 정말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에드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는 카드를 보내온 인물의 정체도 주목할만 하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책도둑>도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메신저>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좋은 작품이었다. 마크스 주삭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