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쿠치바 전설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만요. 어느날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난 하늘을 나는 남자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삼대에 걸친 아카쿠치바가 여성들의 일대기와 드러나는 진실.

 

사쿠라바가즈키. 참 개성있는 작가다. 일년동안 2명을 죽였다는 13살 사춘기 소녀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하는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그리고 이 작품<아카쿠치바전설>. 읽어 본 것은 고작 이 두타이틀밖에 없지만, 그 소재와 발상의 독특함에서 작가가 의식적으로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화된 스타일의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는 찾기 힘든 신선함과 독창적인 맛이 있다. 사쿠라바가즈키 스타일의 소설을 읽고 싶으면 사쿠라바가즈키의 소설을 읽는수밖에 없다라는 느낌이랄까. 사실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니었다. 개성있는 소설이란 생각은 했지만 뭔가 부족한듯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조금 가볍다는 느낌? 그런데 <아카쿠치바전설>은 재미나 완성도 어느면으로 보나 분명히 그보다 한단계 더 진화한 모습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 짧은 기간동안 이렇게 달라질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다. 아마도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작가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 중인 듯 하다. 

 

<아카쿠치바 전설>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대로 제철업을 이어온 아카쿠치바가의 여성 삼대의 일대기를 그린 이 소설은 연도별로 나뉜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을 이끌어가는 세명의 주요인물 - 미래를 보는 능력의 소유자이자 자상한 맏며느리 만요(도코의 할머니), 왕성한 활동력과 강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는 여장부 게마리(도코의 엄마), 그리고 비교적 평범한 성격의 딸 도코 - 은 물론이고 아카쿠치바가의 모든 사람들, 나아가서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너무나도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면모의 인물을 좀처럼 찾을수가 없다. 처음에는 흡입력있고 특징있는 캐릭터들이 한작품안에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단순히 흥미본위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더란것이다.

 

종전후부터 오늘날의 이르기까지의 일본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방대하다면 방대한 소설속에서 이 등장인물 한명한명은 세대별, 계층별 일본인들의 특징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실의 모습이 투영된 이 캐릭터들은 격변하는 시대를 가열차게 달려온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게 해준다. 이런 치밀한 설정은 아카쿠치바를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이다.  

 

소설에서 가문이라는 소재는 '혈연집단' 이라는 폐쇄성 탓인지 호기심을 유발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다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흥미롭다. 그것이 일본쪽으로 넘어오면 특유의 토속적 신앙의 이미지와 맞물려서 신비감, 때로는 기이함마저 더해지는 것 같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가문이라던가 일가라는 표현보다는 '일족'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가 더 잘 어울리는것 같다. 신묘함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이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이다.

<아카쿠치바 전설>의 분위기는 그런 신묘함이다. 이미 미신이 성행하던 시대는 지난 일본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이런 묘한 매력과 설화같은 설정, 동화적 상상력등이 결합되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것 처럼 신기하고 흥미롭고 때로는 따뜻하다. 아마도 이 특별한 분위기가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무겁고 진지한 한 집안의 삼대에 걸친 일대기를 상상했었는데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었다. 일가족의 연대기라는 부분에서는 틀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카쿠치바 전설>을 딱 꼬집어서 어떤 소설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애매하다.

 

궁극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만요가 하늘을 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의 의미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코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미스터리소설로 볼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또 오랜세월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대하소설같은 면이,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그 특유의 분위기에서는 전기소설 같은면도 엿보인다. 굳이 표현해야한다면 아마도 사쿠라바 가즈키식 퓨전소설이라고 하는게 가장 무난할듯 하다.

한권이라는 분량 안에 정말 많은 내용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도 과연 하고 자연스레 수긍이 간다. 워낙 개성이 강한 작품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성향이 맞는 독자라면 이거 정말 물건이다라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사쿠라바가즈키의 진가가 단순히 파격적인 것을 추구하는 신세대 작가라는데 국한된것이 아니라 정말 그 역량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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