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60-1999 환상문학전집 31
아서 C. 클라크 지음, 고호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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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아서 C. 클라크의 생애 모든 단편을 모아 놓은 전집, 그 중에서도 본서에는 제목처럼 1960년부터 1999년 사이에 발표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은 짧은 글안에서 작가의 성향이나 주제의식을 들여다볼수 있는 밀도높은 글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언제고 가볍게 펼쳐들고 마음에 드는 작품만을 골라읽을수 있다는 점이 좋다. 수록된 32편의 작품들을 통해서 거장의 놀라운 통찰력과 상상력을 만끽할수 있었다.

작가의 멋들어진 공상을 즐기는데에만 목적을 두고 SF를 즐겨온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 SF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그동안 서브장르, 마니아를 위한 소설 내지는 오락소설정도로 폄하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히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선입견이었으며,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선입견은 최근에 발표된 작품만을 주로 접해왔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신작들의 수준이 이전 작품들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렇다고 오락적인 요소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최근 작품들이 그동안 쌓인 노하우에 비례해서  더 세련되고 다양화되어 있지 않겠는가. 다만 최근작들에서는 미처 보지 못하고 있다가 고전이라 불릴만한 거장의 옛작품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이 책의 실린 단편들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이미 현실이 되어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그도 아니면 머지않아 실현될 것처럼 보이는 것들. 그것들은 그저 막연히 상상한 것들이 운좋게 잘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라, 각 이야기들을 잘 들여다보면 각 작품이 쓰여진 시점에서의 현실(과학수준이라던가 국제정세같은)에 대한 이해,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것임을 잘 알수있다.

아서 클라크라는 작가가 추앙받는 이유도 분명 이런 통찰력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저자는 그저 미래를 예견한 것 뿐일까, 혹시 그것들이 현실로 실현되는데에 역으로 그의 작품들이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은 아닐까. 지금과 같은 현실의 모습은 그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고, 과거에 누군가의 상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로 실현될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의 상상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현실이 아직 현실로 존재하기 이전에 있었던 SF속 상상들이 어떤식으로든 지금의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상상들을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서 클라크를 포함해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 실은 인류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것이 아닐까. 지금은 마냥 허황된 것만 같은 SF 속 이야기들도 그 상상을 토대로 머지 않아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SF작가들이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선지자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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