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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데, 이 숫자일 뿐인 나이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보이니 거참 희한한 일이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나이만 바꾸어 소개하면 이미지가 달라진다. 연예인들이 나이를 속이는 것도 확실히 이해가 간다. 숫자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 탓일까. 구만팔천팔백원은 지르고 싶어지는데 십만원이면 비싸서 안산다.
샘 클레멘스(마크 트웨인) 제독은 소녀를 수집한다. 대상은 열살이상 열여섯살 미만의 소녀들.
열살에서 하루가 모자라도, 열다섯에서 하루만 지나도 바로 관심대상에서 제외된다. 하루 차이에 무슨 큰 변화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소녀를 대하는 제독의 태도는 무서우리만치 급변한다. 제목이 소녀 수집하는 노인이라고 해서 엽기 변태적인 내용을 연상하면 안된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의 광기, 집착이랄까? 대상이 되는 나이의 소녀들, 일명 엔젤피시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린 다섯편의 작품들은 모두 유명한 문호들과 죽음을 테마로 쓰여진 것들이다. 죽음에 근접했을때 인간이 어떻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무엇에 집착하게 되는지, 고독과 무력감까지 포함해서 그런 광기의 모습들이 섬뜩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섯편중 세편에서 주인공인 작가가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문호들의 생전의 모습과 작품들에서 힌트를 얻어 쓰여진 작품이라고는 해도 거기에 너무 연연하면 그때부터는 각 작품들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지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들을 실존했던 대문호들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저 그 해당 작가의 삶이나 분위기를 차용해 왔다고 생각하면 좋을것 같다. 앞서 말한 소녀들에 집착하는 마크트웨인이나, 자살에 집착하는 노인 헤밍웨이, 그리고 전쟁에서 부상당해 불구가 된 혈기 왕성한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집착하게 되는 헨리 제임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
포의 경우는 채식주의자로서 육식을 혐오해 자신의 오랜 벗인 애견마저 때려죽인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떤식으로 변모해가는지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장르가 뒤바뀌어 버린 듯한 쇼킹한 결말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생전의 모습을 한 레플리럭스(인조인간 내지는 가정용 로봇정도를 떠올리면 맞을 것 같다.)를 주문한 부부의 이야기.
오래된 사이보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정말로 이 집 아내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읽다보니까 에밀리 디킨슨의 분신에 동정, 내지는 애틋한 감정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결말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레플리럭스의 심경의 변화, 이것이 과연 프로그래밍 된 것인지 어떤 것인지....
각 단편들은 실제 작가들에 대해 독자가 가지고 있을 고정된 인상을 그대로 가져와서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나라 독자라면 이런면에서 아무래도 좀 손해를 보겠지만.
일종의 조이스 캐롤 오츠식 환상특급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환상특급이나 일본판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네번째 포의 이야기나 다섯번째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가 취향에 맞을 것 같다. 인물들의 광기와도 같은 섬뜩한 심경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기발하다. 그리고 헨리의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같은 집착이라도 어떤면에서는 묵직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본래 그런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뒤쪽으로 갈수록 흥미로워졌던 것 같다.
대문호들의 이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래야 이 단편집의 진짜 재미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