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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은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어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무언가를 결정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해 보다 확실한 믿음을 얻고 싶은, 즉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심적인 후원자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본인이지만, 그 선택에 뒤따를 책임이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해서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커진다. 예를들자면 행운의 1루피 동전같은 것에.
"선뜻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마음을 결정할 때 사용하던 일 루피짜리 동전을 꺼냈다. 앞면이 나오면 이 여자에게 협조하고, 뒷면이 나오면 이 여자와 헤어지는 거다! 나는 동전을 살짝 던져올렸다. 앞면이었다." (31쪽)
주인공 "람 무하마드 토머스"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게 연행된다. 토머스는 시청자 참가형 퀴즈쇼인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것인가?>에 출연해서 모든 정답을 맞추고 상금 10억 루피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상금을 지불했다가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수 밖에 없는 주최측에서 이것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토머스가 부정행위를 저지른게 분명하다며 경찰을 동원한 것이다. 그때 한 여자 변호사가 나타나 궁지에 몰려있는 토머스를 경찰서에서 빼내어준다.
"스미타 샤" 라는 이름의 이 변호사는 토머스를 돕겠다고 자청하면서 어떻게 모든 정답을 맞출수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 의문을 가질수 밖에 없는 것이, 토머스는 고아인데다,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했고, 교양이라 할만한 것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별볼일 없는 삼류 레스토랑의 웨이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토머스는 분명히 모든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토머스가 지금까지 살아온 가혹하고 고독한 인생 안에서 한번씩 스쳐지나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토머스가 참가한 퀴즈쇼는, 정답을 한문제 맞출때마다 상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대신에 한번이라도 오답을 선택하면 그 시점까지 획득한 모든 상금이 날아가버리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토머스가 출연한 장면이 수록된 DVD를 보면서, 문제가 제시될때마다 토머스가 그 문제에 해당하는 답을 알게된 사연을 스미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이 퀴즈쇼의 독특한 방식과 매력이 전체 스토리에도 보기좋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단계 올라갈때마다 획득한 상금의 액수가 커지고 그에 비례해서 시청자의 긴장감도 점차 고조되어 가는것처럼, 이 소설 역시 한문제 한문제 맞추어 나갈때마다 토머스의 파란만장했던 사연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몰입도를 높여간다. 그가 왜 이 퀴즈쇼에 출연하게 된 것인지, 이번 답을 알게된 데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증폭시켜 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토머스의 "행운의 동전"에 감추어진 비밀.
읽고 있는 동안 서서히 보여지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 인도사회의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 격차의 도식이다. 인도의 주종교인 힌두교는 엄격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제>로 유명하지만, 이는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고급 제품의 혜택을 당연한듯 받으며 살고 있는 부호가 있는 한편, 불결하기 짝이 없는 슬럼가에서 고작 앉을 자리, 물 한 잔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말그대로 개처럼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아연실색케 하는 면이 있다. 또한 인도는 이슬람교와의 갈등이나, 파키스탄과의 긴장상태같은 종교적, 국가적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사정은 토머스의 인생에 있어서도 결코 무관계하지 않다.
퀴즈쇼의 사회자도 지적하지만 <람 무하마드 토머스>라는 주인공의 기이한 이름자체가 이런 인도라는 나라의 다면성, 혼잡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카톨릭인 신부님의 손에서 자란 토머스의 복잡한 사정은, 그대로 인도라는 나라가 껴안고 있는 복잡한 상황을 말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그런 상황, 처지에 주눅들지 않고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 토머스의 정신적 강인함이다.
아이들을 일부러 불구로 만들어 태연히 돈벌이로 이용하는 악랄한 사람들이나, 혹은 강도나 살인같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비일상이라고 할수있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면서도, 토머스는 때로는 힌두교도로서의 이름을, 때로는 이슬람교도로서의 이름을 번갈아 사용해가면서 현명하게 헤쳐나간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교양은 익히지 못했는지 몰라도 토마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할수 있는 임기응변과 재치를 몸에 익히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인보다도 더 깊은 곳까지 세상을 배울수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토머스가 겪어온 인생의 각 단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최종적으로는 그것들이 결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전개가 비전문가의 솜씨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노련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행운의 동전에 숨겨져 있는 비밀"로 말할 것 같으면, 반전으로서는 대단히 기발하다고까지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에게 건네는 메세지로서는 이보다 더 훌륭한 결말이 또 있을까 싶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때 몇번이고 되풀이 했던 그 동전던지기가 바로 토머스가 가진 지혜와 재치의 증거이며, "모든 행운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점쟁이가 건내준 이 1루피짜리 동전은 화폐로서는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쇠붙이에 지나지 않지만, 토머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갈등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강인한 의지를 발휘할수 있게 해준 진정한 조력자이자 틀림없는 "행운의 동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