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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최고라고 할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해외작가 5명 정도를 들라고 하면 절대로 빼놓을수 없는 작가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입니다. 한국영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커트 보네거트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감독의 영화와는 상당히 취향이 잘 맞는것 같습니다.
여하튼. 본서는 보네거트가 아직 <Jr.>를 붙이고 있던 초기의 작품입니다. 초기의 작품이라고는 해도, 이후의 작품에서 볼수 있는 보네거트 다운 면들이 가득합니다. 구술을 하는것 같은 문체, 시니컬한 화법은 여기에서도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큰 흐름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개인의 비극을 희극적으로 그려내는 보네거트 특유의 독특한 유머 정신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후의 보네거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가 되는, 인간행위의 본질을 궤뚫어보는 날카로운 눈과 해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가 담긴 따뜻한 시선이 여기저기에 보입니다.
<마더 나이트>의 주인공은 표면상으로는 나치스 독일의 선전원으로 2차세계대전동안 맹활약 하지만, 실은 그 이면으로는 미국의 첩자였다는 설정입니다. 이야기는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의 한 교도소에 수감된 주인공 캠벨이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주인공은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습니다. 변호도 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이중스파이가 된 경위, 나치스 독일 시대, 전후의 냉전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방관자로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보네거트의 특징중의 하나입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식 슬랩스틱 코미디속의 주인공처럼, 난처한 상황을 뒤늦게 깨닫고 두눈을 껌벅거리면서 "어라, 이게 왜 이렇게 되어 있는거지?"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곤 합니다. 그런 이상함이 있습니다. 허둥지둥 희극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품위있는 분위기를 잃지 않을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이런 면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비극적이고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작품이면서도 결코 뒷맛이 나쁘거나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위트에 더해 앞서 말한 사랑과 냉정함을 겸비한 작가의 인간관 덕분입니다. 커트 보네거트를 읽으면서 찰리채플린의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해학의 코드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