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야심은 맞닥뜨리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도전하지 않았다. 온화한 표정, 잿빛 눈동자,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거의 손대지 않은 짙은 곱슬머리. 그는 듣는 사람, 조용히 묻는 사람,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야심은 환관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야심은 일명 환관탐정입니다. 남자구실을 못하죠.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야심의 비애가 남성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짖누릅니다. 야심은 한때 술탄의 궁에서 봉사했지만, 그의 공을 인정한 술탄으로부터 자유를 허락받아 지금은 이스탄불 시내 모처에서 은둔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워낙 미스터리 작품이 많다보니까 작중에서 탐정역을 맡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특이한 캐릭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캐릭터가 더 귀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세계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별의 별 기이한 탐정들을 책장만 펼치면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로 떠오르는 것만 대충 열거해보아도, 꼬마탐정, 할머니탐정, 요리사탐정, 세탁소 알바에 치과 기공사탐정, 복덕방탐정, 이기적인 탐정, 위장병이 있는탐정, 알콜중독 아버지를 가진 소년가장 탐정, 자기도 모르게 시도때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게 되는 틱장애인, 게다가 유령인데 자기가 유령인지 모르는 탐정, 곤충탐정, 외계인탐정 등등 이제는 인간을 초월해서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군의 가짓수보다도 많은 소설속 탐정역의 인물이 있는건 아닐까, 한번 조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각양각색의 탐정들이 가진 개성과 비교해보아도 환관탐정 야심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입니다. 특이한 출신성분 탓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한번 야심을 알게 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면 그 존재감만은 확실합니다. 독특한 개성이 돋보이는 캐릭터입니다. 환관이라고 하면 흔히, 새된 소리로 전하~ 아니면, 예이~ 하고 소리지르면서 종종걸음으로 궐내를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내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야심은 그런 왜곡된 이미지보다는, 왕과나라는 티비 드라마에 나오는 내시들처럼 왕의 충실한 심복으로서 신중하고 현명함을 두루 갖춘 그런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정적인 현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무대는 국운이 기울어 가고 있는 19세기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한 프랑스인 고고학자가 야심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 유럽으로 가는 배편을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야심은 프랑스 대신 이탈리아 팔레르모행 배편을 구해 르페브르라는 이 프랑스인을 태워보냅니다. 그런데 분명히 배에 올라탔을 그가 다음날 이스탄불의 프랑스대사관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야심은 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입니다. 프랑스대사가 사건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야심은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좋지않은 상황입니다. 방법은 단 하나. 야심은 자신의 손으로 진범을 찾아내기 위해 나섭니다.

연속되는 의문의 살인사건, 의외의 인물들이 얽히고 섥힌 음모를 쫓는 야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보여지는 19세기의 이스탄불의 정경은 그 묘사가 세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의 세밀한 묘사는 물론이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궁안의 삶, 서민들의 삶, 뒷골목에 삶까지 이스탄불 사람들의 모든 생활상, 당시의 오스만제국의 외교적 위치, 국제적인 정세, 역사, 문화유적, 음식에 이르기까지 당시 이스탄불의 모든것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것들에 대한 설명을 위해 지면을 따로 할애했다면 상당히 지루해 질 수 있었겠지만, 부연설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습니다. 그저 야심의 스릴넘치는 추리극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19세기로 타임슬립한 것처럼, 왠만한 역사서나, 여행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풍취를 맛볼수가 있습니다.

간략한 이스탄불의 지도까지 삽입되어 있는데서 알수있듯이, 오스만제국을 연구한 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팩션의 형태를 빌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던 이 도시의 모든것을 아주 세세한 곳까지 보여주고 싶어했던 듯 합니다. 그런면에는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오스만제국의 모든것을 아우르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이 소설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매력적이고도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이스탄불의 안내자로써, 궁과 서민의 삶 모두에 박식하고, 모든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류가 가능한, 그리고 특유의 섬세함으로 뛰어난 요리솜씨까지 갖춘 야심은 그야말로 최적의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심이라는 인물 자체가 당시의 이스탄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야심은 그저 특이함만을 내세운 그렇고 그런 탐정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고려한 작가의 치밀한 계산하에 발탁된 정예중에 정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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