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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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별다른 의견이 없지, 아가씨? 그러면 이제부터 내 애기를 슬슬 시작해 보겠어. 라는 말로 서두를 여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후회로 점철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주인공 쩡광셴의 독백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자본가 계급이었던 광셴의 할아버지가 전재산을 국가에 바치고 그 대가로 받은 창고에서 광셴 일가족은 살고 있었다. 사상교육을 받은후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때문에 넘치는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제 3무선 전신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전형적인 양갓집 규수였으나 해방이후(1949년 공산당에 의한 중국건국)에는 동물원의 동물을 사육하는데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광셴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지금은 할아버지 반열에 접어든 자오라오스씨 일가족과, 위파러 아저씨 일가족이 이 허름한 창고집의 멤버들. 교장선생님이 되어 사상교육의 선봉에 서서 걸핏하면 비판투쟁대회 운운하며 아버지의 바지에 구멍이 나도 모른척하는 자오할아버지의 장남 자오완녠만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그럭저럭 평범한 노동자계급의 삶이었다.

그런 광셴일가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는 계기는, 광셴이 자신의 아버지와 자오할아버지의 딸인 자오산허의 부적절한 관계를 자오완녠에게 밀고하면서부터이다. 이로인해 심한 고문을 이미 한번 받은 아버지를 다시 고발해서 반병신이 되어 돌아오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창고는 빼앗기고, 어머니는 스스로 자신을 호랑이밥으로 던져주는가 하면, 하나뿐인 여동생은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로도 광셴의 입이 벌이는 대활약은 그칠줄 모른다. 친구를 자살로 몰아넣는가하면, 저지르지도 않은 강간죄로 장기수가 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신중하게 옳은 선택을 하기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뱉는 말과 행동들이지만 결국에는 열이면 열, 광셴의 행동들은 부메랑처럼 후회가 되어 돌아온다. 결국 그 많은 여성과의 인연도 모두 비껴가버리는 광셴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마지막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광셴의 후회록은 더욱 가관이다.

말이 좋아 파란만장이지 광셴이 벌이는 일들은 하나같이 뭐라 말할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한심하고 안타깝다. 소설 전체에 깔린 코드는 유머이지만 황당할 정도로 어긋나는, 한 인간의 비참한 처지가 유발하는 블랙유머를 보면서 마냥 웃을수만도없다. 이 후회할 짓거리만 잔뜩 벌이고 있는 광셴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것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신중함을 기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왜곡된 사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비꼬고자 하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가 그저 웃자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광셴의 경우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이 이야기가 언제나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과도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이런 한없이 어리석게만 보이는 후회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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