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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아련해지고, 때로는 아파지는 그런 사랑의 감정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너무나 보편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오묘하고 애틋한 기분을 그대로 전달할수 있는 단어를 결코 찾을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시라면 다르다. 어떤 사랑의 감정이라도 구구절절 풀어낼수 있는 것이 바로 시라는 언어다. 같은 말, 같은 표현이라도 시가 되면, 그저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던 그것은 하나의 감정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듣는 이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이 책에는 우리시대 대표시인들이 추천한 50편의 사랑시와, 각각의 작품에 대한 김선우, 장석남 두 시인의 해설이 실려있다.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라는 부제처럼 우리의 정서가 담긴 한편 한편의 사랑시들은 한소절 한소절이 모두 내마음을 노래하는 것처럼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만해 한용운님의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시에 대한 김선우 시인의 해설중 이런 부분이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수도승이었고 사상가였던 만해 한용운은 뛰어난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다. 1926년 나온 그의 시집 <님의 침묵> 은 지금 다시 읽어도 아름다운 연애시집이다. 지금 사랑의 열병을 앓는이라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님의침묵>)라며 님의 떠남을 슬퍼한 시도,'만일 당신이 아니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나룻배와 행인>)라며 사랑의 완성을 갈망한 시도 모두 예사롭지않은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20쪽)
이르게 찾아온 첫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가슴이 터져나갈것만 같던 그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이 한편의 시가 아직도 나의 감수성의 큰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지 않은 지금도,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한소절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그때 그 당시의 기분으로 휩싸이게 되곤 한다. 한편의 시가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는 햇살이 되고, 굳어있던 마음을 터뜨리는 도화선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 물이고 활자가 기름이라면 시는 그 활자를 마음으로 녹여내는 촉매제다. 마음속에 녹아드는 시를 읽고 나면, 따뜻함으로, 그리움으로, 때로는 슬픔과 애절함으로 가슴은 금세 꽉 들어차고 만다.
감정의 기복이 적다고 생각해온 내안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랑의 감정이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의 놀라움이다. 서로 다른 시인들이 품고 있는 사랑과, 거기에 따른 자상한 해설을 묵묵히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애타게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정말로 그렇다. 사랑하는 동안에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했던 기분을 이렇게 언제라도 꺼내볼수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시집이라면 따분하고 접근하기 힘든것으로만 여기던 사람이라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가득찬 이 시집을 읽으면 조금은 더 가까이 느끼게 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니까, 지금 사랑하고 싶은 이라면 이 책에 실린 사랑시를 들으면서 행복해져 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사랑과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한다. 사랑의 감정이 행복을 부르고 행복은 또 사랑을 불러온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