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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종말 리포트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 부커상 후보작입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반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폭주하는 상업주의(성문화도 또한 산업화의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를 등에업고 급속하게 발전해가는 과학기술(특히 바이오계통), 관리사회, 파벌주의, 환경오염, 그리고 모든 것이 파멸한 뒤에 남겨지게 되는 기형 생물과, 작은 고민조차 없을 정도로 단순하기 그지없는 신종 인류. 우화적으로 성에 대해서 다루었던 작가의 전작 <시녀 이야기>와 비교하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음에도 때로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어떤 하나의 학설처럼요. 비슷한 류의 소설들이 언제나 그렇듯 처음이 좀 난해하고 지루합니다. 그렇지만 설정이나 분위기가 파악되고 나면(대략 1권 중반쯤 부터일까요), 이게 또 쭉쭉 읽어나가게 되니까 2권이나 되는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작가의 압도적인 상상력과 상세한 묘사는 과연 베테랑의 솜씨다, 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화자인 지미=<스노우 맨>는 과학계통의 이과가 주름잡는 미래 사회속에서는 일종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약자인 문과계열의 인간입니다만, 그 섬세한 화법이나, 단어의 선택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의 원제이기도 한 ORYX AND CRAKE 두 명의 인물 가운데, 엘리트이며 허무주의자이기도 한 크레이크는 그 냉혹함이 때때로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궁핍한 생활속에서 부모의 손에 의해 팔아넘겨져 아이때부터 포르노 산업의 희생양이 되어 온 오릭스라는 인물을 그리는데 있어서는 종래의, 성을 파는 여성 = 성녀, 라는 진부한 영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게다가 애트우드 여사는 페미니스트의 선봉격인 작가라는데 좀 더 참신하고 근미래적인 신세대 여성의 모습을 확실히 제시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911테러때도 비슷한 감상에 젖은적이 있지만 최근에 테러사건이나 이스라엘사건등을 뉴스에서 접할때마다 공연히 섬찟해지곤 합니다. 이 소설에서 하루아침에 세계가 붕괴되어 버리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런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근미래의 모습은 결코 밝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녀이야기와 비교하면(애트우드의 소설은 이 작품을 빼면 고작해야 시녀이야기 한편을 읽어본것 뿐이지만) 훨씬 상냥한 톤으로 그려져있습니다. 한없이 암담한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액션도 조금 있고, 서스펜스에다 로맨스, 그리고 동화같은 부분도 있어서 다채로운 구성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단숨에 읽어내려간 뒤에 남은것은, 그 심오함에서 오는 여운과 함께 정말로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