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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계기가 된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였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굉장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은 과연 어떤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며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분위기를 창조해낼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후에 원작을 읽고 나서는 그 감탄이 그대로 원작자인 코맥매카시에게로 옮겨와 버렸다. 음울한 세기말적 분위기라던가, 인간의 본능까지도 역행하는듯한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냉혹한 인물상이라던가 모든것이 소설에서는 영화 이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핏빛자오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묵시록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겨나오는 이 작품의 그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물론이고 가장 최근작인 로드보다도 강렬하다. 이야기의 배경이 19세기 중반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 미국 역사상 가장 황폐하고 살육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는 잔혹하고 과격한 장면들을 묘사하는 풍부한 언어들과 미묘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들에서 더욱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 특유의 문체와 읇조리는 듯한 문장부호 없는 대사들은 마치 음유시인의 입을 통해서 듣는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감정이란 것이 없는 존재 그 자체다. 잔혹하리만치 담담한 어투로 처참한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괴로워질 정도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에의 본능을 시종일관 아무런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고 눈하나 깜짝않고 머리가죽을 벗겨낸다든지, 벌레라도 밟아 죽인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모습들은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폭력의 순간들이 모두 과장된 것이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것이다. 평온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과거에는 낭만이라던가 막연한 환상이 개입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사방이 적인 세상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저 살아갈뿐인 나날들이라면 인간은 본능에 충실해질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아비규환의 시대였는지도 모를일이다. 정말로 인간의 그런 감추어진 단면을 끄집어 낸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어줍잖게 감동을 주려는 이야기보다는 더욱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매체에서 작가의 이런 묵시록적인 세계관이나 담고있는 메시지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오락적인 측면으로서의 이유가 더 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저 재미있어서 읽을뿐이다. 어딘가 비이성적으로 뒤틀리고 초월한 듯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강한자가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 이성은 배제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원초적인 세계를 즐기는게 솔직히 즐겁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들의 활약상을 그린 전기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문학적인 색체가 짙은 깊이 있는 문체로 이런 이야기를 즐길수 있게 해주는 작가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 외에는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유명한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왠지 이 영화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