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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ㅣ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서술트릭의 대가라는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삼부작중 첫번째 작품. 드디어 읽게 된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기대이상으로 재미있는 작품이였다. 정답! 문장마다 흘러넘치는 유머, 광기, 서스펜스. 훌륭한 스토리텔링. 기필코 란포상을 거머쥐고 말겠다는 작가의 의욕이 느껴진다. 파격적인 구성이나, 결말을 향해서 독자를 몰아가는 스피드감이나 모든면에서 다음장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는 그런 소설.
야마모토 야스오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서른세살의 작가지망생. 8월 31일이 마감인 <월간 추리 신인상>에 응모하는 것을 목표로 집필을 시작한다. 그런데 좀처럼 글이 써지질 않아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마감날짜만 하루하루 다가오는 초조한 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기적처럼 영감이 떠오른 야스오의 펜 끝에서 드디어 봇물처럼 이야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끝에 완성된 이 역작의 제목은 <환상의 여인>. 야스오는 이 작품이 상을 수상하게 될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이 원고를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 주겠다던 친구 기도가, 어이없게도 완성한 원고의 원본과 복사본 모두를 전철안에서 잃어버리고 만다.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연이어서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사건들. 그리고 <환상의 여인>은 야스오가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당선이 되는데...
서술트릭하면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 식스센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식스센스의 대단한 반전의 충격은 좀처럼 잊을수가 없다. 반전이 훌륭한 영화는 많이 있지만, 당시에 이 식스센스에서의 반전은 그 전이나 혹은 그 후의 다른 영화들과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세상이 뒤집히는 느낌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이런 식으로 관객을 속이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경탄을 했었다. 사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중간에 이미 그 반전을 눈치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전이 이루어진 장면에서 그 경이로움이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던건 그 처음보는 종류의 발상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였기 때문이다. 눈치챈 뒤에도 설마설마 하면서 내 짐작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잔뜩 숨죽인채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이 놀라운 영화를 만들어낸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나의 우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훗날 뒤늦게 추리소설을 읽게 되면서 보니, 이미 이런 기법이 추리소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던 기법이 아닌가.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물론이고, 특히 밸린저의 작품들은 식스센스가 표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반세기나 전에 작품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서술트릭이란 것으로 말할것 같으면 소설의 구성 그 자체가 트릭이 되어서 독자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노리는 수법. 따라서 서술트릭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것 만으로도 작품의 재미는 크게 반감하고 만다. 그 전에는 이런 형식의 반전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식스센스는 그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경지를 보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으려나. 확실히 그 충격을 다시 기대하면서 본 샤말란 감독의 차기작 언브레이커블은 굉장히 실망. 그 뒤로 본 다른 영화나 소설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훌륭한 반전이 있는 작품에서는 놀라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더이상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이미 이런식의 트릭에는 면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서술트릭의 대가라는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서술트릭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 역시 다른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문장 여기저기를 의심하고 수색해 보거나 나름대로 이런 트릭인거 아닐까하고 추리해 보거나하는 선입관으로 가득한 독서가 될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놀란것은 책의 표지나 홍보문구를 보아도 알겠지만 서술트릭이라는 것을 감추려는 의도가 전혀 안보인다는 점. 대놓고 서술트릭 운운하는, 무엇보다 놀란 것은 소설 안에서조차도 어떤 주의도 없고 별다르게 조심하는듯한 기색조차 없다. 종국에는 그래 어디 트릭이 뭔지 좀 아시겠습니까? 하고 갑작스럽게 묻는바람에 아연실색해버렸다. 아예 대놓고 도발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일단 서술트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이 작품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모르고 읽었을 때는 갑자기 뒤집어지는 이야기에 어리둥절 해버릴지도... 여러가지 생각하면서 읽긴 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결국 결말에서는 깜짝 놀라버렸다. 아찔한 반전의 연속이다. 비틀고 또 비틀고, 한정된 스토리안에서 짜낼수 있는 속임수는 모두 짜내보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한번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이미지가 정말 강하다. 서술트릭이란 단어도 그렇지만 이 본격추리라는 단어도 정말 잘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작명센스에는 감탄하고만다. 아무튼 작가의 열의만큼이나 독자도 한번 해보자는 자세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어려움을 말한다면, 반전이 너무 많은 관계로,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져서 혼란스러운 채로 결말을 맞이했다는것. 결국 진상은...어떻게 되었다는 걸까. 나에게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진상을 간파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만 그다지 심각하거나 무겁지는 않아서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의 놀아보자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마다 소지의 "경탄할만한 걸작" 이라는 칭찬처럼,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같이 놀면서 작가의 발상에 경탄하자. 그러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