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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서장에 나오는 "생명의 기본 비트는 3박자. 즉, 왈츠인 것이다." 라는 문장의 어감이 왠지 로맨틱해서 좋다. 생명 발생 메카니즘의 정밀함에 놀라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높은 확률을 뚫고 나서야 그 필연의 끝에 하나의 개체가 되어 비로소 인간으로서 탄생하게 된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나면, 커다란 힘의 존재를 믿고 싶어진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함깨 인간은 결국 신의 영역에까지 발을 디뎠다. 그 신의 영역에서 남다른 수완을 보이고 있는 산부인과의, 소네자키 리에가 현행 의료 제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미 와해된 안전신화를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관료들의 눈치나 살피는 현직교수들의 입장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뒤에 조용히 떠나 가는 모습은 강하고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지만, 경쾌하게까지 보이는 리에의 행동 뒤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이 숨겨져 있다.
현재 일본의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라면, 지금까지의 가이도 다케루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줄곧 제기되고는 있었지만, 이번은 특히 메시지성이 강한 작품이었다. 의료 붕괴를 불러오고,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가 감소하게 된 요인은 물론, 인공 수정, 불임 치료의 현실과 대리 출산에 거는 희망등을, 당사자들의 비통한 심정과 함께 이야기한다. 거의 현행 제도에 대한 고발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중심에 소네자키 리에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리에는, 그 냉철함과 냉정함으로 인해서 얼음마녀라 불리우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순교자의 이미지에 가깝다.
이야기가 절정에 접어들어 두명의 임산부의 출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급박한 부분에서, 스릴보다는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으로 내보내어진다는 경외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이 작품은 픽션이지만, 어찌보면 논픽션의 그것과 같이 현역 의사로서의 작가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작중에서 리에는 작가대신에 그 이상적인 제도를 실현시켜 나가는 잔다르크같은 인물이 되어 그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낸다. 다만 픽션으로서 이 이야기를 즐기는 것과 그 의견에 현실적으로 동조하느냐 하는것은 큰 차이가 있다.
솔직히 나는 리에가 추구하는 세상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는 일본의 의료계의 현실은 그렇다쳐도 인공수정이니 대리모이니 현실에서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것들에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소설 속에서는 리에가 정의의 사도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눈에는 정말로 그냥 마녀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내 생각의 짧음을 탓해야 하는건지.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처음에 느꼈던 로맨틱한 느낌이 뒷맛에 남아있지 않아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