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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제39회 맨부커상 수상작. 이것 만으로도 벌써 기대치가 높아져 있는데, 게다가 아일랜드가 무대. 이건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일랜드인인 작가가, 아일랜드인의 눈으로 아일랜드인에 대해서 쓴 소설입니다. 9 남매의 중간정도로 태어나 이제는 중년의 아줌마가 된 베로니카가, 술에 취해 바다에서 익사한 한살 연상의 오빠 리엄의 사체를 인계받고,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모여 그의 장례식을 치룹니다. 알콜중독자인 리엄은 방종한 삶을 살던 끝에 술에 취해 스스로 바다속으로 걸어들어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의 이면에는 좀 더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계기가 된 사건을 알고 있는 것은 한살터울의 여동생인 베로니카 뿐입니다. 어린시절 둘이 함께 할머니의 손에 맡겨져 있던 때의 일입니다.
나이가 비슷한 탓에, 형제자매중에서 리엄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베로니카가 리엄의 죽음을 통보받고, 장례식 준비, 흩어져 있는 형제들에게 연락, 어머니의 뒤치닥거리등을 해나가는 동안, 이야기의 화자로서 리엄에 대해, 할머니인 에이다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지나간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들려줍니다. 듣고 있으면 매우 괴롭고 어두운 이야기들. 형제들도 그다지 착실하다고 할 수 없고, 부모도, 조부모도, 모두가 조금씩 어긋나 있고 어딘가 미진한 부분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베로니카의 독백에서는 공허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져 보이던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가 마지막에 하나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나면, 비로소 베로니카가 지금까지 쭉 짊어지고 온 짐에 무게를 알게 되고, 그녀의 독백에서 느껴지던 "불쾌함"을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시종일관 우울하던 이야기의 끝에 떠오르는 전향적인 시선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맨부커상은 역시 영문학의 최고봉의 하나이다. 그러나, 원어민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게중에는 비교적 쉬운 것도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조금 벅찬 느낌입니다.
벅차다고 해서 내용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거나, 문장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의 쓸쓸한 분위기도 정말 좋아하고, 강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그머니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여운이 있는 문장도 저는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앞으로도 몇차례 더 읽게 될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아일랜드인들만의 정서라고 해야할까요. 어쩌면 이 소설만의 정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 깊숙히 발을 담그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주인공에게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것이 이 책을 어렵다고 느끼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이 소설을 두고 "매우 아일랜드적인 책" 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라서, 읽는 동안 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의 수치나 아픔을 소재로 한, 특유의 애환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영락없이 아일랜드 소설입니다. 우리 정서와 비교하면 "한" 이라고 해야할까요. 아일랜드의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그런 경향이 조금 있네요. 특별히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작품에서 만큼은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특유의 감수성이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에 끌리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처럼 매력을 느끼는 독자에 한한 이야기이지만요. 이 책도 그런 작품군에 속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