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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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한 경외감을 느끼게 해 준 책. 정말이지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까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다니, 같은 상상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을 달리하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좀비라는 상상의 산물을 소재로 쓴 논픽션이라는 느낌. 물론 실존하지도 않는 소재가 논픽션이 될리 만무하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서 그려낸 이 이야기는 적어도 그 분위기에서 만큼은 영락없는 논픽션의 그것과 같다.

때는 인류가 좀비와의 치열한 전쟁을 막 끝마치고 난 근미래. 그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놓은 형식으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좀비가(이 책에서는 좀비를 전염병으로 규정 하고 있다.) 처음 발병한 중국 한 마을의 참상을, 생존자의 입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듯 듣는것으로 시작해서,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별, 장소별로 전세계 곳곳의 목격자들이나 체험자들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이 전쟁의 전체적인 구도를 그려볼수가 있다. 특정한 스토리를 따라가는 다른 작품들과는, 그 정보의 광범위함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말이 가상의 인터뷰이지, 전세계의 정치, 군사, 경제, 사람들의 생활상등등 다방면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그 디테일이 정말로 세밀하다. 시대적 배경이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근미래라는 점도 있어서 이 설정은 완전히 창조된 것 만은 아니고, 지금의 국제 정세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정세와 상당부분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는 근미래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세계 정세에 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전체적인 구도뿐만 아니라, 각각의 인터뷰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생동감은 이게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는게 더 신기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친다. 

이 책에는 한국과 북한의 상황을 묘사한 인터뷰도 실려있는데, 한국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부분이 또 상당히 마음에 든다. 외국 특히 서양쪽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고 있으면 너무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져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다지 그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세부적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그 미묘한 분위기와 긴장감의 정도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나는 군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무장 지대 안에서 보냈는데 그 때의 공기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짧은 분량 안에서이긴 하지만 작가가 상당히 정통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부분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 하다. 

좀비가 몰려다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나위없고, 내가 진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전쟁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SF의 범주에 들어갈만한 작품인데도 자꾸만 지나간 전쟁을 떠올리게 되는건 아무래도 이 생존자들의 인터뷰라는 것이 과거를 회상하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회상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만큼 실제로 있었던 과거의 어느 사건을 돌이켜 보고 있는 듯한 실제감이 살아있다.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좀비물 중 최고. 아니 그 전에, 이런 류의 픽션이 있다는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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