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가인 '나'를 화자로한 7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단편집. 7편 어느 이야기에도 상실이라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거기에  있던 것, 그렇지만 지금은 없는 것. 죽어 버린 남동생, 잊혀진 이야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기억, 따뜻한 추억등등. 여객기 안에 구비된 구토봉투를 수집하는 취미나, 비단잉어를 모두 들어내고 남겨진 황량한 연못, 어느날 갑자기 위로 들린 채 다시는 내려오지 않는 동생의 왼팔에 이르기까지, 섬찟하면서도 어쩐지 투명한 아름다움이 있는 상실, 혹은 소실. 이 책에 담겨있는 상실은 재생을 부른다. 아무 의미없이 그저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빈자리를 더듬다 보면, 또 그자리에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져 온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순서가 실종자들의 왕국으로 시작해서 소생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뭐랄까, 변함 없이 오가와 요코다운 책이라고나 할까. 메르헨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 위를 주인공이 왔다 갔다하면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교묘하게 엇갈리는 그런 느낌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이 작가의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곤 한다.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어서 그런것이냐 하면, 그정도까지 몰입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알게 모르게 현실을 잊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이 작가가 아쿠다가와상이라는 큰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였을 것이라고, 처음 오가와 요코를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7개의 각각의 단편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이 책은, 소설가인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몇개의 시대를 잘라내 보여주고,최종적으로 그녀가 있는 현실로 돌아온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되어 있는 탓인지, 지루할 틈 없이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따라 흐르는데로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녀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걸어 왔을 것이다. 윤곽이 희미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녀의 마음만이 또렷하고 선명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오가와 요코가 만들어 내는 세계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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