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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 도쿄 중심지에 널찍한 부지를 자랑하는 성마리아나 학원이 설립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인 1919년의 일이었다. 학원을 설립한 성마리아나는 바로 그전 해 단신으로 파리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좁은 섬나라를 동으로 서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 덕에 학원은 그녀의 이상이라 할 만한 형태로 만들어져 새로운 시대의 대양을 향해 씩씩하게 노를 저어나갈 수 있었다. 배움의 터에 다니는 이국의 명문가 규수들은 성마리아나를 진심으로 우러렀다. -
명문가의 규수들이 주류인 전통의 여학교 성마리아나에서, 대부분 평범한 중산층 계층 집안의 딸들로 이루어진 독서클럽은 존재감 희미하고 비주류에 속하는 그저 변방의 동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부와 연극부가 득세하는 가운데에서 독서클럽의 부원들은 부실에 조용히 틀어박혀 독서와 토론을 하는 데 만족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1919년 설립된 뒤 2020년 남녀공학으로 통합될때까지의 성마리아나 학원 100년의 역사속에서, 독서클럽이 표면 위로 부각되고 위상을 드높이는 사건이 60년대 이후로 몇 차례 있었다. 독서클럽의 클럽사에 있어서 아주 특별했던 소녀들이 등장했던 때의 일들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편의 에피소드들은, 비주류인 변방클럽이기 때문에 성마리아나 학원 정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이 비화들을 당시의 독서클럽에 몸담고 있던 누군가가 비밀 클럽회지에 기록한 내용들이다. 그렇다. 이 책은 이름없는 사관에 의해 기록된 변방클럽의 사초이자, 클럽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소녀영웅들의 행적을 노래하듯 서술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독창적이고 특이하며 개성넘치는 이야기. 난생 처음 맛보는 생소한 느낌의 소설.
여성 삼대의 일대기를 통해서 격동하는 근대 일본의 모습을 그려냈던 아카쿠치바전설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속의 세대와 계층이 다른 다양한 인간상, 사회상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하면,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의 소녀들에게는 다분히 일본 정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허울좋은 개살구들이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는 이론으로 잘 무장되어 있고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줄 아는 지식인들의 집단인 독서클럽이 변방으로 밀려있거다거나, 실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창립의 모체였음이 밝혀지는 에피소드등을 통해 잘 알 수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어떤 정치적사건들을 풍자한것처럼도 보이지만 일본의 사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단정을 지을수는 없다. 단지 그런 추측이 가능할 뿐. 난해하다면 난해할수도 있겠다. 발랄하고 앙증맞아 보이는 표지이미지와는 다르게 심오한 면도 존재하는 소설이다.
2008년도 나오키상 수상작가인 사쿠라바 가즈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젊은 작가답게 재기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색적인 소재를 즐겨 다루고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독창적이어서 마치 평범하고 평이한 것을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기본적인 풍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매번 색다른 메뉴가 제공되는 음식점 같다고나 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구나. 소설이란건 정말 어떠한 형태로도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증 하나. 성 마리아나 학원에는 해마다 왕자님을 선발하는 전통이 있다. '여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안에서 우상으로 받들어지는 남성향의 존재' 라는 것이, 이 소설이 아닌 다른데서도 종종 보게 되는 익숙한 설정인 것을 보면 여자들은 정말로 이런것에서 어떤, 판타지를 보게 되는 것일까? 이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쓰여지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감수성이 다른 탓이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 감정이 어떤 느낌의 감정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왜냐하면, 남학교에서 같은 남학생을 공주로 선발한다고 한다면 상상도 하기전부터 저절로 현기증이 나려고 하기 때문에. 무슨 차이지? 그냥 그렇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