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크래시 1
닐 스티븐슨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영상미 넘치는 사이버펑크 대활극

가까운 미래, 종래의 국가 체제가 붕괴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프랜차이즈 국가가 등장한 현실 세계와, 가상인격인 아바타가 활보 하는 넷상의 거대한 가상 공간 '메타버스'. 이 2개의 세계를 무대로, 세계 최강의 검객인 프리랜서 해커 히로와, 특수한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물건을 배달해주는 어여쁜 쿠리에 와이티가 수수께끼의 바이러스 '스노크래시'를 둘러싼 음모와 맞서 싸우는 사이버 펑크 대활극.

 
잘 알려져 있듯이 아바타라던가 메타버스의 효시격인 작품이다. 그 용어들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작가의 선견지명이라고나 할까,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아도 요즈음의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상세계의 개념들이 거의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그렇지만, 원작이 발표되었던 때가 1992년, 당시로서는 분명 참신한 설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2008년인 지금에 와서 읽고 있자니 지금과는 미묘하게 다른 가상공간의 존재가, 오히려 복고풍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어떤 의미로는 이후에 흔히 차용되어 온 세계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익숙한 만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중간중간 스토리를 쫓지 못하고 낙오해 버려서 곤란한 처지가 되곤 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비로소 모든 것이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지만, 화려한 액션 뒤편에 깔려있는 심오한 종교론과 그것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조금 벅찬감이 있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가상세계의 개념이, 십 여년 뒤인 오늘날과 백프로 동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인터넷 문화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머리로는 오히려 난해한 부분도 없지 않다. 

 
애를 먹기는 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였는데, 작가 후기에 나와있듯이 스노크래시는 애당초 소설이 아닌 비주얼 노벨로서 기획된 작품이였던 모양이다. 즉, 개개의 장면들이 우선 하고, 스토리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체계.

 
부분적으로 스토리를 놓쳐버리는 적은 있었지만 그런 부분에서조차도 확실히 개개의 장면은 선명하고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다. 히로의 피자배달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메타버스 안에서의 결투,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와이티, 선상의 결투, 초고속배틀등 난해하게 느껴진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시원시원하게 휙휙 스쳐지나가는 장면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다른 소설들에서는 보기힘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당초의 비주얼 노블이라고 하는 형태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작가가 의도한 이미지를 독자의 뇌리에 새기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영상미 넘치면서도 많은 생각을 요하는 소설이였다. 스피디하고 화끈한 오락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절대 시간 떼우기용으로는 적합치 않을 듯하다. SF라는 장르의 한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인만큼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꼭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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