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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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치는 사람을 죽였다. 그날 밤 미쓰세 고갯길에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목을 졸라 살해한것이다. 불의의 사고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그의 행위는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지탄받아 마땅한 중범죄다. 그리고 이같은 짓을 저지른 유이치가 범죄자임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세간에서는 이런 유이치를 극악무도한 악인이라 생각하게 될것이다. 그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다. 그렇지만 격정과 혼란속에서 유이치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것은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읽고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악인이냐는 질문에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유이치는 버림받았다. 어린시절 선착장에서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유이치에게 등대를 보고 있으면 곧 돌아오겠다며 유이치를 놔두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유이치는 느닷없이 버려진 이유를 알수가 없다. 자신이 무언가 나쁜짓을 했기 때문에 엄마가 싫어하게 된것일까?
진심으로 대했던 윤락가의 아가씨에게서도, 만남사이트에서 알게된 보험판매 여성에게서도 그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또 다시 버림받고 만다.
 
 
그러나,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유이치는 어느 순간 아이러니하게 가해자로 뒤바뀌어 있다.
아들을 버리고 떠났던 자신의 어머니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서 상습적으로 뜯어낸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가해자로 만드는가 하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서툴러서,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겁에 질려서, 이유는 각각이지만 유이치는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가해자로 남는다. 그리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은 그가 받은 고통이 아니라 오직 그가 저지른 짓일뿐이다.
 
 
그런 유이치가 뒤늦게 진짜 사랑에 빠지지만 이미 살인을 저지른 뒤이고 수사망은 점점 좁혀져 오고 있다. 그는 또다시 가해자가 되려고 한다. 여자의 목을 조른다. 그는 체포후에 자신이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를 가진 인간이며 여자는 이용했을뿐이라고 진술한다. 이제서야 겨우 만나게 된 진정한 사랑을 위해 지금 자신이 해줄수 있는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악인인거였네요? 마지막 여자의 말에 떠오른 의문부호는 자신을 향한 설득에 가깝다. 얄궂은 운명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것은 유이치뿐 아니라 이 작품의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서의 입장이 뒤바뀌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아니 뒤바뀌어 있다기 보다는 양쪽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는것이 좋겠다. 세상의 시선은 그 중 어느 한쪽면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들중에 진짜 악인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몇년동안 견디기 힘든 괴롭힘을 당해온 아이가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을 흉기로 살해한다면 언론과 사람들은 분명 경악의 눈으로 이 아이를 바라볼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막다른 곳까지 몰린 아이가 간신히 찾아낸 유일한 탈출구가 그것이라면 비록 범죄자일지언정 이 아이에게 악인이라는 굴레를 씌우기에는 너무 가혹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연약한 노인의 몸으로 험악한 청년들이 모여있는 호랑이굴로 무모하게 뛰어들수밖에 없었던 유이치의 할머니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해본다면 조금 알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홍수에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은, 얕고 왜곡된 정보들에 놀아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가 당연히 진실이라 믿어 마지않는 그것들이 정말 진실이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이 책의 작가, 요시다슈이치의 눈은 대단히 추상적인 것을 쫓고 있지만 소설가의 본래의 모습이란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제목이 갖는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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